▲ 소초면 사전동 교항2리 마을 한 가운데 600년 된 은행나무가 힘겹게 서 있다.

고려가 망할 때 '불사이군'의 충정으로 벼슬을 버리고 치악산으로 숨은 고려신하 이반계(李攀桂 1340~?)가 심은 이후 600여년 동안 마을을 지킨 은행나무가 이리저리 잘리고 베어져 몰골이 흉한 채 마을 한 가운데 서 있다.

소초면 사전동 교항2리는 작은 골짜기를 따라 농가 25여 호가 살고 있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은행나무는 그들보다 한참 더 오래전부터 마을을 지켰고 무더운 여름, 나무가 만든 큰 그늘은 마을 주민들의 편안한 휴식처가 됐다.

하지만 크게 뻗은 가지 하나가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져 집을 덮치는 사고가 나면서 젊은 주민들은 아예 베어버리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게 됐다. 그러나 연세 많은 동네 어른들은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나무를 베는 것이 왠지 석연치 않다는 생각에 베는 것만은 만류했다.

자신이 만든 그늘 아래 옹기종기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해마다 여름이면 언제 부러질지 모르는 위험한 가지를 하나 둘씩 내 주고, 불타고 남은 몸통마저 반을 내주고 났더니 이제는 잔가지 몇 개에 의지해 간신히 생명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올해는 심한 가뭄에 잎도 피우지 못했다.

은행나무 바로 옆에 살고 있는 김순녀(95) 할머니는 "옛날에는 저 나무에서 은행을 몇 가마니씩 따서 주인(원주이씨 문중)에게 주고 제사도 지냈어!"라며 "이젠 나무가 너무 보기 흉해졌다"고 안타까워 했다.

*위토(位土)가 있는 이 은행나무는 원주이씨 문중(경주계)에서 '행수목'이라 하여 귀하게 여기고 있으며, 잠깐 동안이나마 원주군의 '보호수'로 지정되기도 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거목으로서의 품위를 기꺼이 희생하고 마을 주민들과 공존하는 길을 택한 은행나무가 올핸 노란 단풍잎 지는 꿈도 접은 채 마을 한 가운데서 장승처럼 서 있다.

*위토(位土): 묘에서 지내는 제사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경작하는 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