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고 하는 음력 8월 15일인 민족의 큰 명절인 추석,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인다.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의 차례상을 차리고, 귀향길과 성묘길에 황금빛깔의 가을 들녘을 바라보기만해도 가을의 풍성함이 가슴 가득 넉넉함으로 채워주는 시간이다.

그러나 올 추석은 아직 여름기운이 남아있고 추수하기에는 너무 이른 9월초에 맞이하여 예년의 추석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너무 이른 시기도 영향이 있었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도 넉넉함과는 거리가 멀게 불안과 답답함으로 보낸 듯하다.

긴 추석연휴를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올 추석은 첫 도입한 대체휴무일 덕에 많은 이들이 4~6일을 연이은 휴일로 보냈다. 그 긴 휴일이었건만, 휴일이 '쉼과 재충전의 시간' 과는 거리가 있는 '명절이 아닌 노동절이었다', '출근하는 일상이 더 행복하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내 주변의 일터에는 며느리로, 엄마로, 아내로 긴 연휴를 실랑이한 30~40대의 여성활동가들이 고단함을 회복하기 위해 연이은 연차를 쓰거나, 사무실에 복귀했으나 명절 후유증으로 온몸이 결리고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넋두리를 한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명절 전에 분주하고 두렵던 마음이 '이번에도 해냈어'하는 듯한 안도감과 뿌듯함이 엿보인다.

추석연휴를 앞두고, 인터넷쇼핑몰에 '추석맞이 며느리용 깁스'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화제가 되었다. 또 공공기관 당직을 기혼여성들이 서로 맡아 하려는 현상이 의외라서 놀랐다고들 한다. 남자들과 어르신들은 명절에 일하지 않으려는 며느리들의 잔꾀가 '기가 막히다' 또는 '너무 얄밉다' 고 한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내가 아는 지인은 명절이 다가오면 열흘 전부터 가슴이 콩닥대고, 체한 듯 답답하고, 온몸에 기운이 없어진다고 했다.

일명 '명절 증후군'이다. 사람들 마다 증상은 다르지만, 원인은 명절동안에 겪어야할 며느리들의 스트레스이다. 가족들과의 만남에서 생길 일들과 명절 음식장만 그리고 반복되는 식사준비와 설거지…. 노련한 주부들에게는 조금 많아진 가사일이지만, 학업과 직장에 중심을 두고 살아온 가사 일이 서툰 젊은 여성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두려운 과업일 수 밖에 없다.

10여년전 여성민우회에서 여성들의 명절증후군을 없애기 위한 '평등한 명절보내기 캠페인'을 원일로 농협앞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명절 장을 보러 나온 여성 뿐 아니라 개념있는 남성들도 공감과 지지의 뜻을 밝히며, 명절문화개선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5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두 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지나가며 "일도 안하는 못된 것들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네"하며 막말을 퍼부었다. 여성이면서도 가족모두가 행복해지는 평등한 명절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는 그분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철없고 이기적인 '며느리' 또는 모든 걸 큰 며느리 몫으로 돌리는 '동서'에 대한 분노였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추석을 맞아 직접 찾아가거나 만나 인사를 나누는 대신 메일이나 SNS 또는 문자를 통해 서로 인사를 나누고 덕담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부분 '풍성한 한가위,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 되세요'라고 보내온다. 평소에는 비교적 답을 잘 하는데, 명절인사는 적극적으로 나누지 못하고 반응이 쉽지 않다. 아마, 하는 일은 없어도 명절 전 마음이 분주하고 넉넉치 않은 탓이리라.

기독교적 가풍과 합리적인 가족관을 지닌 남편(4남1녀중 3남)을 만난 덕에 아버님을 모신 납골당에서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것으로 명절을 보낸다. 오랫만에 만난 가족들은 화목하고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에 한번쯤은 남자들이 설거지를 도와주기도 하니 '전생에 나라를 구한 복'이라 할만하다.

또 요즘처럼 수상한 시절에 20대 청년 4명이 모두 무사히 군복무를 마쳤고, 가족모두가 무탈하게 한자리에 모였으니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그래도 20여명인 대가족이 함께 자고, 먹어야하니 각자의 집에 편안하게 지내던 일상을 벗어난 불편함이 있다.

평범한 여성들이 다쳤다고 거짓 깁스를 찾거나 그 자리를 피할 이유로 당직을 선택할 만큼 힘들어하는 우리 명절문화! 우리의 전통을 지키고 옛 방식대로 명절을 고집하기보다는 변화한 시대에 맞게 돌아봐야할 것이다. 평소에도 잘 먹어 영양과잉인 요즈음이니, 음식장만을 위한 노동은 줄이고, 가족들과의 만남의 즐거움과 행복으로 가득 채우는 '평등한 명절' '모두가 행복한 시간'으로 다같이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30대 활동가인 남자 후배가 건네 온 명절 인사가 꿈이 아니라 현실로 이루어길 바라며….

"다같이 행복한 그리고 평등한 연휴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