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갈이 봉사를 하고 있는 유효섭 씨.

사회복지시설에서 칼을 갈아주는 남자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유효섭(42) 씨다. 유 씨는 7년째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해 무료로 칼을 갈아준다.

승용차에 맷돌과 칼을 가는 도구들을 싣고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해 무뎌진 칼날을 바로 세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김없이 복지시설을 찾아 칼을 가는 유 씨의 사연은 놀랍다. 경기도 용인이 고향인 유 씨는 주니어 경륜 국가대표 출신이다. 8년 동안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재능을 뽐냈지만 코치와의 갈등으로 국가대표를 그만뒀다.

촉망받던 경륜 선수가 하루아침에 직장을 구해야할 처지에 놓였고, 몸 상태도 악화되며 뇌수막염을 3차례 앓기도 했다. 그때마다 유 씨는 삶에 대한 희망과 더불어 인생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유 씨는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 나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했다"며 "삶의 존재 이유와 죽음에 대해 성찰하게 됐다"고 말했다. 평생 운동만 해온 터라 직장을 구하는 일은 힘들었다. 일당을 받으며 공사장에서 일했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장사도 했다.

원주로 온 후 아파트관리기사로 근무하고 있는 유 씨는 죽음을 떠올리며 느꼈던 삶에 대한 깨달음을 위해 칼을 갈기 시작했다. 유 씨는 "물질의 능력을 초월해야 정신세계로 향하는데 정신세계는 한계가 있고 이를 초월하면 신의 세계가 된다"며 "칼을 가는 행위는 초월된 인간의 정신을 가다듬는 일이다"고 말했다. 유 씨의 말처럼 칼은 예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정신'의 도구로 여겨져 왔다.

조선도검, 일본의 사무라이 검 등은 육체와 정신의 수양을 통해야만 올바른 가치를 발휘한다. 일본의 경우 칼을 가는 사람은 장인으로 분류돼 국가에서 지원하고 명예 또한 높다.

유 씨는 "장인은 첨단 기술로 빠르게 변화하는 것이 아닌 무디고 낡더라도 인간의 혼이 담긴 정신을 이어가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유 씨는 사회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핀란드의 경우 사기죄를 살인죄처럼 취급하고 교육에서 경쟁금지법을 실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처벌이 약하고 입시위주의 공부를 통한 경쟁 때문에 인간 본연의 의미를 상실케 한다"고 말했다. 유 씨는 자신 만의 철학과 인생론을 갖고 구부정한 사회현상에 분노하며 칼을 간다.

유 씨가 가는 칼은 유 씨 자신을 향하고 있다. 유 씨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칼을 가는 일이며 죽음의 문턱에 섰을 때 가장 보람된 일로 기억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