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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에 대한 명상
2014년 06월 23일 (월) 김영섭(시인) wonjutoday@hanmail.net

그해 봄, 교정에는 '포스트 모던'이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었다. 강의실에선 '포스트 모더니즘'이 침을 튀기며 혈압을 올리는 문학교수의 입을 비집고 나왔고, 도서관엔 포스트 모더니즘 관련 책들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지난날의 저 빛나던 헤겔과 맑스와 루카치가 헌책으로 도매금으로 고물상으로 팔려나갔고, 그 빈자리에서 아도르노와 보드리야르, 푸코와 데리다가 화사한 정장을 걸치고 나타나, '68정신'과 'BE FREE', 'Born To Natural'을 외쳤다. 학생운동은 시들해져 있었고, 학생들은 거리를 버리고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통유리에 앉아 정체를 알 수 없는 햄버거를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힙합과 성(性)과 연애를 이야기했다.

'섹스'와 '해방'과 '쿨'이 새로운 시대의 담론으로 뻔뻔하게 논의되기 시작했고, 지난날의 모랄과 상식은 땅위에 버려졌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해 4월 벚꽃이 하얗게 피어날때, 교정에는 머리에 꽃을 꽂은 한 여인이 손에 책과 휘발유병을 든 채 웃고 다니기 시작했고, 5월 낙화 속에서는 책만 읽어오던 한 복학생이 중앙도서관 옥상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거리 거리마다, 부도덕과 혼돈과 불안이, 자판기 속 콘돔처럼 가지런하게 널려있었다.

그 시절 순진성에 길들여져있던 나는, '포스트모던'이라는 데카당스한 현실이 두려웠고, 내 순진성이 훼손될까봐 날마다 불안하기만 했다. 장정일에 대한 이해를 통해, 나는 내 시대의 혼란, 그러니까 포스트모던 현상을 이해하게 되었다.

혼란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 우리는 적어도 그 혼란한 현실에 정직해야 한다는 것. 기존의 질서에 사로잡혀 현실의 무질서를 재단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 혼돈과 무질서가 새로운 정돈과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것. 장정일의 시와 소설에 그려진 현실 그대로였다.

장정일이 어느 인터뷰에서 '나는 적어도 2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이해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진실일 것이다. 내가 장정일의 책을 모두 소장하고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정신이다. 나는 장정일의 모든 책을, 정말 정성껏 다 읽어냈다.

그리고 그를 충분히 이해한다. 타락한 시대를 타락한 방식으로 드러낼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절망과 작가적 정직성. 나는 그 정직성을 사랑한다. 나에게 장정일은 특별하다.

장정일을 처음 나에게 소개해준 것도 첫사랑 그애였고, 그 정신을 이해시켜준 것도 그애였던 만큼, 장정일에 대한 기억은 내 첫사랑의 아주 내밀한 부분과 포개져있다. 그것을 내 청춘과, 내 사랑의 순수와 순결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김영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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