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이호길(88·무실동) 선생은 도내에 생존해 있는 유일한 애국지사다.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한 한기악(1898~1941) 선생을 비롯해 '조선교육사'를 집필한 민족교육자 이만규(?~1978) 선생, '대한독립공명단'을 조직한 최양옥(1893~?) 선생, 광복군에서 활약한 박정렬(1918~1979) 선생 등 뚜렷한 족적을 남긴 원주출신 애국지사들은 많지만 현재 생존해 있는 이는 이 선생이 유일하다.

그는 일본군에 강제 징집됐다가 탈출해 광복군에서 항일투쟁에 앞장섰으며 해방 후 고향에 돌아와서는 국권회복과 우리역사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선생의 고향은 호저면 가현리다. 집안 대대로 인천에서 살았지만 증조부가 항일운동을 하다 피신하면서 원주에 터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어릴때부터 부친과 할아버지로부터 증조부의 일화를 듣고 자라면서 항일정신을 키웠다.

공립원주소학교(현 원주초교)를 졸업하고 조선운수회사에 근무하면서도 독립운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의 결심은 커져만 갔다. 만주에 있는 광복군에 참여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당시 청년 이호길이 꿈 꾼 유일한 자신의 길이었다.

광복군에 합류하기 위해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하던 중 선생은 일생일대의 결심을 한다. 일본군의 강제징집에 응해 만주로 간 뒤 탈출한다는 계획이 그 것. "목숨을 건 위험한 일이었지만 당시 광복군이 있는 만주로 가기 위해선 그 길 외에 방법이 없었다"는 게 선생의 설명이다.

1944년 3월 19세의 나이로 징병돼 만주로 향한 선생은, 그로부터 한달 뒤인 4월 중국 하남성 신향에서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중국 전선으로 가는 도중에도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여러차례 탈출을 모의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신향성 안에 위치한 훈련소에 도착한 뒤에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을 했다.
성 내에 배치된 초소간의 거리와 각 초소를 이동하는 병력의 이동시간을 가늠한 뒤 밧줄을 이용해 성밖으로 뛰어 내렸다.

그 후 무려 45일간 여러 마을을 전전하며 광복군이 있는 서안으로 향했다. 일본군의 추격을 따돌리고 굶주림까지 이겨내야 하는 고행의 길이었지만 광복군에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다는 희망에 감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중국군에 붙들려 포로수용소에 수용되는 등 천신만고 끝에 광복군에 합류한 선생은 이범석 장군이 이끈 광복군 2지대에 편입됐다. 그 곳에서 미국 국방성 전략정보처 대원들과 함께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

이 선생은 "정보공작 및 주요 시설물 파괴 등이 주요 임무로 한미합작 특수훈련인 OSS훈련 및 정보·파괴반에서 국내 침투공작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대기했었다"고 했다. 조국독립을 염원하며 모든 힘겨운 훈련과정을 이겨낸 선생은 하지만 1945년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타국에서 광복을 맞는다.

광복과 함께 귀국한 뒤에는 고대사 등 역사 연구에 매진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 등을 접하면서 광복이 되면 일제가 왜곡한 우리의 고대사와 독립운동사를 바로잡고 널리 알려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아흔을 바라보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광복회 활동과 항일독립운동원주기기념사업회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한국고대사 등 우리나라 역사 연구에 정열을 쏟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잃어버린 한민족 상고유래사'와 '한배달국 원류사' 등 두 권의 역사서를 펴낸 선생은 독립을 위해 희생한 애국지사들과 그들의 활동을 담은 독립운동사를 정리하고 싶다고 했다.

매년 광복절 타종식에 참석할 때마다 "내가 목표했던 일이 이루어져 남다른 감회를 느낀다"는 이 선생은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철저히 가르쳐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되풀이하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 선생은 "남은 여생은 일제가 왜곡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역사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