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들 틈 속에 비좁게 갇혀 존재감을 잃었다고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지만 처음부터 팔삭둥이(?)였음을 얘기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그저 날렵한 눈썹지붕만이 멀리서 박물관이 거기 있음을 알릴뿐, 그마저 박물관 지붕인줄 모르면 원주역사박물관은 거기에 없다.
그렇게 14년, 근래 몇 년 동안은 한 해 4만∼5만 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꾸준히 찾는 공간이다.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가 늘어난 측면도 한 몫 한 것이겠지만, '박물관에 뭐 볼게 있나!'라는 사람들에겐 이 숫자가 '의외'일 수 있고 놀라운 '사건'일지도 모르겠다. 체험이나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분들을 제외한 순수 방문객들만 그렇다니 지리적·물리적 접근이 문제라고 외쳤던 우리들의 인식은 이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역사학자들은 원주가 '문명사회'로 진입한 시기를 3세기 중엽 백제 고이왕 때부터라고 기록한다. 그로부터 1천700여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원주라는 무대위에 살다 간 수 많은 선조들의 흔적이 지금도 도처에 남아 있다. 처음부터 유산을 이 작은 박물관에 보관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볼 게 없는 박물관!'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 해 수만 명씩이나 되는 시민이 박물관을 찾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박물관에서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사건을 위주로 전시하고 있지만 대체로는 그 지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정표'와 '실마리', 그리고 '졸가리'들을 갖춰 놓은 곳이다. 우리 역사박물관을 찾아오는 수 만 명의 관람객 중 상당수도 우리 지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실마리'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원주 역사를 제대로 보려면 봉산동의 비좁은 건물 안이 아니라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박물관에서 얻은 '실마리'를 들고, 산으로 들판으로 골짜기로 나가서 만나는 그곳이 바로 생생한 원주 역사박물관이다. 선조들의 숨결과 손 때 묻은 속살을 현장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박물관이 역사와 문화의 이면을 찾아가는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미래 삶을 통찰할 수 있는 훌륭한 지혜의 창고 역할도 한다. 단순히 예술작품이나 나비표본처럼 지역사회와 시민들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고독의 전당'이란 이미지는 이미 오래 전 일이다.
특화된 기획전시와 교육프로그램을 발굴·운영하고,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마당을 펼치는 것은 박물관에 대한 지리적·물리적 접근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知)적, 심(心)적 접근을 통해 지역의 소중한 전통과 문화는 물론 역사에 대한 이해의 단초를 제공하기 위한 박물관 직원들의 노력이 숨어있다.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와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용한 '실마리'와 '이정표'를 폭넓게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시설개선이 시급한 실정이긴 하나, 여전히 존재감 없고 지리적·물리적 접근이 어려운 시민을 위해서 원주의 오랜 문명과 역사를 잘 담아 낼 수 있는 멋진 박물관 하나! 이제는 가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