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동학농민혁명은 갑오난, 동학난, 갑오농민봉기, 갑오농민전쟁, 동학농민전쟁, 동학농민혁명으로 이르는 긴 이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명칭을 보면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처지가 보인다. 집권자의 입장으로 보면 혁명(革命)보다 란(亂)이라 부를 것이고, 그 규모를 축소 폄하하려는 입장에선 봉기(蜂起)라고 하고 싶을 것이다. 갑오년에 일어난 일이니 갑오농민전쟁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사상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면 '혁명(革命)'이 정확한 명칭일 것이다. 게다가 쿠데타처럼 권력욕에 눈이 먼 세력들이 일반 민중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강제로 집권하려는 것이 아닌, 동학이란 새로운 철학에 기초해 대다수 민중의 참여로 이루어진 일이라면 동학농민혁명이라 불리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백범일지를 보면 백범 김구 선생은 1882년 과거시험을 치르면서 부패한 조선말기의 타락상을 보고 난 후,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1883년 동학에 입도하고 접주가 되어 동학농민혁명에 참가하였고, 이후 명성황후 시해와 관련된 일본특무장교를 손으로 때려잡고 검거된 후, 탈옥을 하고 독립운동을 떠난다고 나와 있다.

장황하게 이를 설명한 것은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지만 원주가 이 동학농민혁명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188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제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이 4년 후인 1888년 4월 5일 원주 호저 송골에서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운 최제우의 법통을 이어받고 보따리 하나만 들고 35년을 숨어 다니면서 포교하였기에 '최보따리'라고 불렸던 분이 어찌 알았는지 몰라도 체포되기 한 해 전인 1887년 12월 수레너미재에서 의암 손병희 선생에게 법통을 넘겼다고 하니 이것도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범상치 않다. 어떤 이는 해월 선생의 체포로 동학농민혁명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고도 하였다.

그리고는 백여 년이 지나 1990년 4월 12일,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은 치악고미술회 회원들과 함께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있던 해월선생의 피체지인 호저 고산리 송골마을 입구에 추모비를 세우고 '천지즉부모(天地卽父母)요 부모즉천지(父母卽天地)니 천지부모는 일체야(一體也)니라'라는 글귀를 새겼다.

해월 최시형의 사상은 자기 내면의 한울을 키워 자신의 발전을 이루는 것이 동학의 기본이라는 '양천주(養天主), 제단을 자신을 향해 진설함으로 자신이 곧 한울이기에 자신을 잘 모셔야 한다는 향아설위(向我設位), 세상 만물은 한울의 기(氣)로 이루어진 것이니 무엇을 먹는 행위는 곧 한울이 한울을 먹는 것이라는 이천식천(以天食天) 등, 지금의 생각으로 보면 내면의 자기를 들여다보라는 성찰과 자아각성의 사상이었고, 뭇 사물의 존재를 따로 보지 않고 나와 동일시하는 사상이었다. 그래서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도 당신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하였고 서화작품에도 해월의 말씀을 많이 인용하셨다.

지금 전국 각 지역에서 동학혁명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사람들의 전봉준버스를 추진한다고 한다. 오는 5월 10일, 각 지역에서 사람들을 모아 버스를 타고 전봉준 장군이 동학농민혁명의 횃불을 처음 올렸던 정읍으로 모이는 프로젝트라고 한다. 그 버스는 앞으로 동학의 발상지인 경주의 용담으로 갈지, 동학농민혁명이 나기 한 해 전, 한 달간 모여 동학의 나아갈 바를 난장토론을 했다는 보은취회로 가게 될지 모른다.

나는 이 버스가 1888년의 해월 선생을 찾아왔으면 좋겠다. 다만, 이런 버스가 원주로 올 수 있으려면 우리 원주가 동학농민혁명과 해월 선생의 사상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할 기회가 많아져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원주문화원이 그간 기울여왔던 노력은 의미가 있다. 물론 여타의 사회단체들도 동학역사답사를 간간이 진행했었다. 그렇지만 그 힘들이 단순히 역사유적답사에 그치지 말고 해월 선생의 이천식천의 사상, 향아설위의 사상을 아우르고 '살아있는 동학'이라 일컬어졌던 무위당 선생의 생명사상에도 닿았으면 한다.

역사적 사실에는 배경이 되는 사상이 있다. 동학농민혁명이 중요한 것은 혁명 자체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같이 꿈꿨다는 것에 있다. 우리 원주가 생명의 도시가 되려면 이것의 뿌리가 되는 정신이 무엇인지를 좀 더 풍부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