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훈훈한 웃음을 주고 궁금함과 설레임으로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 20년전 생산된 아날로그 TV에, 철 옷걸이를 개조한 안테나로 지상파 5개 방송만 볼 수 있고, TV시청에 관심이 없던 우리 가족이, 주말이면 한동네 사는 친정에 가서 10대 손녀에서 70대 할머니까지 온가족이 함께 보거나 인터넷으로 찾아서 꼭 시청하는 드라마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어~우리집 TV랑 똑같은 걸 보네." "맞아, 그때 그시절은 그랬지~"하며 아련한 기억들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함께 웃으며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이렇게 기다려지고 가족간 대화의 물꼬를 틔워주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우리 가족에게만이 아니라 20~30대 동료들이 있는 나의 일터에서도 세대를 넘나들며, "정이의 남편은 누구일까?"를 비롯해 드라마에 대한 이런저런 뒷이야기들까지 즐겁게 나누게 되고, 인터넷에서도 이야기 전개의 예측과 소감을 나누는 기사들로 술렁거리는 것을 보게 된다.

이 한 편의 드라마가 우리들 마음 속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던 예전의 추억 속에서 따뜻함과 즐거움을 현실로 불러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화려한 한류스타나 아이돌이 주연을 맡진 않았어도, 불륜이나 탄생 비밀 없이도, 유명한 지상파방송에서 방영되는 것이 아니어도, 알콩달콩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모티브를 찾아낸 탄탄한 시나리오와 생동감있는 연기력이 돋보이는 드라마다, 배우들의 열정으로, 깨알같은 웃음과 궁금함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감성을 나눌 수 있다면 전 국민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는 드라마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응답하라 1994'는 20년 전 대학가 하숙집 모습을 통해 지방출신으로 낯선 서울생활에 좌충우돌 적응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와 20대의 사랑이야기이다.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은 온 식구가 거실에 모여 TV를 보고, 다함께 밥을 먹으며 한가족 처럼 일상을 나누는 모습에서 개인중심의 경쟁사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람살이의 끈끈한 정이 느껴지고 그런 관계에 대한 대리총족감을 갖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런데 너 괜챦아?'라고 친구를 걱정하는 칠봉이처럼 서로에 대한 염려와 애틋함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얼마 전 한 대학생이 대학 게시판에 붙인 대자보에서 시작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은 청년세대 뿐 아니라 부모세대, 고등학생, 그리고 국회의원과 외국인 유학생까지 전국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많은 이들이 우리의 삶과 정치현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스마트폰 세대의 소통 방식인 SNS가 아닌, 30년 전의 아날로그 방식인 대자보를 통해 생각을 밝히고, 행동하기 시작해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이 되고 있다.

이처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관심이 차갑고 힘겹게만 느꼈던 세상을 향해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안녕하지 못하다"또는 "그동안 나는 안녕한 줄 알았다고 그러나 안녕함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노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관심이 '먹고살기 바빠서, 직접적인 내 일이 아니어서' 등 모른채 하던 사람들에게 "그런데, 너 정말 괜찮은거야?"라고 진실된 울림이 된 것이다.

20년 전의 드라마 속 이야기와 "안녕하냐?"고 일상적인 인삿말 대자보 두장이 이렇게 큰 반응을 불러왔을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투박하고 불편했지만 홀로 외롭게 세상과 싸우는게 아니라. 갑을관계만 있는 세상이 아닌, 그 시절 그 때처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마음, 누군가 아픔과 버거움을 가족 처럼 공감하고 응답해 주는 것. 서로에 대한 관심과 서로를 지지할 수 있는 그 관계의 절실함을 표현해 냈기 때문일 것이다. 장일순 선생님 말씀이 담긴 글귀가 떠오른다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