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론면 노림리에 사는 한기방(54) 씨는 부론면 토박이다. 부론에서 태어나 부론에서 청년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부론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서울로 유학간 적은 있지만 일생 대부분을 부론면에서 살아 한 씨를 모르는 부론면민은 거의 없다.

단순히 고향에 오래 살았다고 해서 한 씨가 부론면 터줏대감이 된 것은 아니다. 고향에 대한 애향심과 자부심 때문인지 동네 대소사는 물론 부론면 곳곳에 한 씨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한 씨는 "1982년 당시 노림리에 경운기가 두 대 있었는데 그 중 한 대가 우리집에 있었다"며 "도로를 만들기 위해 강에서 손수 흙을 퍼 날랐던 시절 경운기가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운기로 논 경지정리도 하고 이웃주민 농사일도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주민들로부터 신임을 얻게 됐고 그것이 밑바탕이 되어 마을 역사상 최연소로 26살에 이장으로 선출됐다.

마을 일에 좀처럼 나서기 싫어해 이장을 맡기 싫어하는 요즘과는 달리 당시에는 이장이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만 했다는 한 씨는 이후 이장 16년, 부론면 농촌지도자회장 6년, 새농촌지도자 3년, 남한강 물축제 준비 위원 및 준비위원장 6년, 부론면 주민자치위원회 부위원장 3년 등을 역임하는 등 30년 가량을 마을일에 헌신했다.

한 씨는 "80년대에 짜장면 한 그릇씩 대접하고, 곡식을 나눠주면서 사람들을 많이 사귀었는데 그 분들이 지금까지 마을발전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며 "아파트 몇 채 값을 투자할 정도로 돈을 썼지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역시 사람"이라고 말했다.

수십 년 마을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은 남한강 물축제를 시작했을 때라고 한다. 조선전기의 조창으로 유명했던 흥원창이나 삼도 접경지역으로 권세가 등이 많이 모여들었던 부론면의 옛 영광을 재현해보고자 물 축제를 개최했던 것. 축제를 위해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이 꼬깃꼬깃 접어둔 용돈을 기부하고, 부론면민들이 자발적으로 축제를 준비하면서 하나가 되었던 모습이 가장 보람됐다고 소개했다.

지금은 노림리에서 하우스 농사로 제2의 청춘을 보내고 있다. 한 씨는 "요새는 안 사람하고 포도, 호박을 키우고 있는데 그 재미에 푹 빠져있다"며 "이제는 후배들을 양성해 부론면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