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은 고려 충숙왕17년(1330)에 출생하여 국자감시(國子監試)에 합격했으나, 고려 말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자 고려 멸망을 한탄하며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고향인 원주에 낙향, 은둔 하면서 오직 충절로 나라를 걱정하며 직필(直筆: 정권에 굴하지 않고 바르고 정의로운 글을 씀)과 농사로 부모님을 봉양하며 일생을 보낸 당대 절의의 충신이다.

태종(이방원)이 운곡의 인품을 잘 알고 있어 임금이 된 후 운곡에게 벼슬을 내리고자 했으나 거절하자 태종이 직접 운곡을 찾아 원주 치악산에 행차했다. 그러나 제자가 임금이 돼 치악산까지 찾아 왔으니 운곡은 고려조에서 한낱 진사(進士)일 뿐, 벼슬을 하지도 않았고, 국록(國祿)을 먹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이태조(李太祖)와는 등극하기 전 동학 친우며, 태종의 스승 이였으니, 운곡이 시운(時運)에 영합(迎合)하여 좌명훈신(佐命勳臣)이 된다 한들 그 누가 옳지 않다 하겠는가 마는 운곡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굽히지 않았다.

치악산 상봉 변암으로 피해 태종을 만나지 않으니 역사는 조선왕조가 역성혁명(易姓革命)을 할 때 절개와 의리를 지킨 분들 가운데, 정포은, 길야은 그리고 원운곡 세분의 선생이 더욱 뛰어나다 하여 은나라 삼인(三仁)에 비유했고, 특히 운곡 절의는 백이숙제(伯夷叔齊)를 능가하며, 당대 제일의 우국지사(憂國志士)며 탐관오리(貪官汚吏)를 철저히 증오한 의인으로 이양소, 남을진, 서견과 더불어 고려 4처사(高麗四處士)라 하였다.

따라서 학자들은 운곡의 절의정신은 세조(世祖)의 불의에 항거하는 사육신(死六臣) 생육신(生六臣)의 절의정신으로 이어지고 조선왕조가 500여년의 왕업을 유지할 수 있는 민족의 정신으로 승화될 수 있었다고 하며, 운곡의 절의정신은 원주의 표상으로 선양되고 있다.

운곡은 생전에 야사(野史) 6권을 직필, 궤 속 깊이 감추고 자손에게 유언하기를 자신과 대등한 인물이 아니거든 절대로 궤를 열지 못하도록 간절히 일렀으나, 후손 때에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열어 보니, 궤 안에는 고려 때 직필기록이 들어 있어 새로이 들어선 이씨왕조에 발각되면 멸문지화를 당할까 두려워 불태우고, 현재 시사(詩史) 5권에 시 1천144수가 남아 있다.

선조29년(1596) 한강(寒岡) 정구(鄭逑)는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운곡묘소에 제향하고, 기재(寄齋) 박동량(朴東亮)은 선조36년(1603년)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운곡 묘소를 찾아 제향 후 운곡이 집필한 시집을 읽어 운곡의 청아한 기풍과 숭고한 절개를 보고 저서가 비밀리에 감추어지는 것과 이름이 후세에 알려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며 한권으로 모아서 '운곡시사(耘谷詩史)'라고 이름을 붙이고 "풍속을 살펴보려는 자들이 보지 않으면 안 될 책이니, 붓을 잡는 자들이 이 책에서 채집할 수 있도록 대비해 둔다" 라고 시사 서문에 편집 이유를 밝혔다.

이 퇴계 선생은 운곡의 시를 읽고 "원주에 신사(信史)가 있다. 국가만세에 마땅히 운곡 원천석 선생의 말을 좇아야 한다"고 했고, 상촌(象村) 신흠(申欽)은 "정인지의 고려사에 비하면 해·별과 무지개 이상의 차이가 있다. 이 시를 읽으매 눈물이 두어 줄기 내리더라" 했다.

운곡 묘소의 묘갈은 현종11년(1670)에 건립되었다. 근세에 와서 1977년에 '국역 운곡시사'가 발간됐는데 김종무(金鍾武) 선생은 서문에서 "고려 말 충절로는 삼은(三隱)을 꼽지만 운곡의 높은 절개는 삼은에 비할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운곡의 후학들과 백성들은 광해군4년(1612), 호저면 산현리 칠봉에 서당을 건립하고, 12년 후인 인조2년(1624)에 운곡서원을 창건하여 운곡의 위패를 봉안하고 사액을 상소하니 현종14년(1673.12.16)에 국왕의 특명으로 칠봉서원이라 사액을 내렸다.

국왕께서 직접 내린 축문과 하사품을 예조정랑 송정렴이 가져와 제향 했다. 현종대왕께서 직접 내리신 춘추제향 축문에 "시사가 만고의 강상이니 사문의 제향이 영세토록 끝이 없다" 했다, 그러나 운곡은 그 뜻이 굳어 몸을 피했으니 필부라도 뜻을 빼앗기 어려웠다. 그래서 태종께서 예를 갖춰 자신을 낮추고 "운곡의 절개를 이루게 하셨다"라 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한번쯤 마음을 가다둠고 선현들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강원도와 원주시에서는 2005년부터 원주의 정신적 지주이신 운곡 선생의 청고정신(淸高精神)을 선양하기 위하여 매년 4월23일 운곡제(耘谷祭)를 봉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