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지방우정청에서 근무하는 김영식(55) 씨. 강원도 동해에서 태어나 바다를 보고 자랐지만, 정작 산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지난 2000년에 우체국 직원들과 함께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는 3년만에 그 막을 내렸다.

그 해 겨울 김 씨는 큰 결심을 하는 계기가 생겼다. 아들 지수 군과 대화가 단절된 것. 김 씨 부자간에는 '소가 닭 보듯 하다'는 속담이 꼭 맞았다. 결국 아내 정진이(55) 씨의 바가지(?)로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자 지수 군을 설득했다.

2004년 9월, 당시 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지수 군에게 산에 가자고 제안했고, 토요일 수업을 빠질 수 있다는 유혹에 두말할 것 없이 지수 군이 응하고 나선 것. 하지만, 그 산행이 장장 8년이나 걸릴 줄 지수 군은 알 턱이 없었다.

김 씨는 처음 지리산에 오를 때를 회상하며 "지수가 옷 사주고 카메라 사주니까 좋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산에 따라왔다"며 "나중엔 안가려고 울고불고 했다"고 전했다. 또 "책 제목에도 있지만 갈미봉을 지나면서는 '아빠, 우리 119 부를까?'라고 할 만큼 힘들어 했다"고 덧붙였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대간꾼의 길을 걸은 지수 군. 한계령에서 희운각에 이르는 구간과 희운각에서 미시령에 이르는 구간은 김 씨의 성화에 군 복무중이던 지수 군의 금쪽같은 휴가 기간에 이뤄냈다. "그래도 마칠 건 마쳐야 한다"고 구박했다는 김 씨.

김 씨는 아들과 함께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동안 후회도 했었다. 백두대간에 크게 3구간 정도 직벽 바위를 밧줄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구간이 있는데, 이 구간을 지나면서 "자칫하면 아들을 잡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내가 미친놈이지 하고 후회도 많았다"는 게 김 씨의 회고다.

부자가 함께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김 씨는 자신을 독한 아빠라고 표현하며 지수 군을 착한 아들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독한 아빠와 많이 배운 아들이 더 맞는 표현이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김 씨 부자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배웠다. 힘내라고 응원해 주는 사람, 힘든 인생을 살며 자살까지 생각했었다는 사람, 거지 몰골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하산한 김 씨 부자에게 흔쾌히 음식을 내어 준 이들이 모두 가르침을 준 사람들이다.

자연스럽게 큰 절까지 하게 될 만큼 감사함을 알려주고, 철학적인 질문의 답을 고민하게 하고, 대간 길 내내 명관을 보여준 백두대간. "산은 학교"라는 김 씨는 "내 학교에 아들을 데리고 다닌 것"이라고 말했다. "장사를 하든, 공부를 하든, 사업을 하든, 지수가 인생을 살며 분명 백두대간 종주한 일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백두대간 길이는 지도상 650㎞이지만 실제 부자가 걸은 거리는 800㎞가 된다고 한다. 김 씨 부자가 백두대간에 상주한 시간은 400여 시간. 2004년 10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지리산 천왕봉에서부터 설악산 진부령까지 33회에 걸쳐 종주했다.

그리고 산행이 끝날 때 마다 김 씨는 블로그에다가 아들과의 산행을 기록했고, 아내 정 씨의 권유로 책을 출간하게 됐다. "기록은 중요한 거니까 블로그에나 올리면 됐지 뭐 하러 책을 내냐고 아내랑 의견 충돌도 있었다"는 김 씨. 결국 아내 정 씨의 성화에 못이겨 출판사 몇몇 곳에 원고를 보냈고, 출판사 '북갤러리'로부터 회신이 왔다.

현재 김 씨는 종주를 마치고 다음 산행을 기약하고 있다. 다음 산행에는 지수 군을 동행시키지 않을 거라고 한다. 지수 군은 현재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벤처기업 창업을 준비 중이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동안 느낀게 있으니 알아서 잘 할 것"이라는 김 씨. 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부자는 함께한 시간만큼 믿음도 커졌다.

한편, 김 씨 부자의 산행기를 담은 책 '아들아! 밧줄을 잡아라(1·2권)'는 서점과 인터넷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북갤러리, 각권 1만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