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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유감
2013년 05월 06일 (월) 최현숙 상지대 사회복지과 교수 wonjutoday@hanmail.net
   

3, 4월에는 각종 기관·단체에서 자문위원회·심의위원회가 열린다. 회의의 대부분은 법정 규정으로 돼있기 때문에, 준법을 위해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절차이다. 공공기관이든 민간기관이든 기관·단체에서 운영하는 심의·자문위원회의 본래 목적은 다양한 이해관계인과 전문가의 의견을 수용하려는 좋은 뜻이 정책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교수들이 전공과 관련해 각종 위원회의 자문·심의에 참여하는 일은 대학의 주요한 세 역할이 연구·교육·사회봉사라는 의미에서, 사회적 의무에 해당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이런 위원회에 교수나 연구자가 중요한 것은 업무상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의견 제시와 함께 혹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중간 역할, 또는 조정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관여하는 대부분의 위원회에서는 업무자문을 하면서 실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보너스로 사회(복지)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등 변화하는 사회현상을 배우는 좋은 기회도 되기 때문에 필자는 주어진 위원회 회의에 기꺼이 참여하고 있다.

문제는 때때로 정부에서 운영하는 위원회에서 발생한다. 지난 3월 말, 일 년에 두 번 회의를 하는 강원도사회복지위원회에 참석했다. 올 한 해 사회복지사업 계획을 심의하는 일이다. 그런데 위원회에 갈 때마다 자괴감을 가지게 된다. 원칙대로라면, 무릇 정책심의라는 것은 정책이 결정되기 이전에 행해야 하는 절차이다.

다음 해 정책 초안은 전년도 후반기에 초안을 가지고 위원들의 열띤 논의를 수반한 심의를 거쳐 수정하고 확정해야 다음 해에 시행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모든 정책이 결정되고 새해가 시작된지 3개월이 지나 이미 시행되고 있는 확정된 인쇄물을 보면서 심의하는 회의는, 심의가 아니라 통보 또는 홍보에 해당하는 자리가 돼 버리는 것이다.

위원들은 정책의 주체가 아니라 들러리를 서게 되는 셈이다. 물론 당일 회의에서 사업 내용에 관한 사후 질의와 필요한 사안에 대한 건의들이 있었다. 담당자들은 열심히 적었다. 회의를 마친 후 점심식사까지 잘 대접받고 오면서 허탈했다.

'이런 게 뒷담화가 되겠구나, 회의에서 나온 위원들의 사후 건의에 해당하는 발언들은 뒷방 늙은이의 잔소리로 간주될 것이겠구나…'라는 상상에 이르렀다. 정책에 있어서 뒷담화나 잔소리는 의미가 없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의견을 개진하고 그 의견이 논의·수렴되고, 정책에 반영·관철되는 절차가 없이는 어떤 의견도 무의미 하다. 시민들이 공들여 제도화한 각종 위원회가 설립된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엄청난 시간낭비, 예산낭비이다.

필자는 올해 임기 2년인 이 위원직을 두 번째로 수락했다. 실질적인 기여가 없이 시간낭비가 아닐까 하는 회의 때문에 이 위원직을 계속하는게 맞는지 고민했다. 그러면서 그나마 이렇게 자꾸 이의를 제기하는 역할이라도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수락하기로 했다.

실은 지난 연말 내내 혹시 도청에서 심의에 관한 연락이 없을까 기다렸었다. 사회복지사업법 사회복지위원회 조항을 찾아보기도 하고, 강원도 조례를 복사해 읽어 보기도 했다. 이번 회의에서 필자가 제기한 심의시기에 관한 지적은 올해로 세 번 째이다. 무슨 소용 있으랴, 회의는 이미 끝났고, 법적 요식행위는 구비했으니….

더구나 담당 공무원이 다음 위원회까지 그 업무를 지속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한 해 사회복지 도정이 단 한 번의 회의에서 결정돼 버린다. 심의시기에 대한 지적에 모두 공감한다지만, 위원 누구 하나 지속적인 감시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1년에 두 번 공문이 날아오면 참석할 뿐이니 재미가 있을 수 없다. 누구의 책임일까? 위원장 역시 같은 처지이지만, 책임있는 자리인만큼 합리적인 회의 절차에 대한 강력한 주장과 이의 관철을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실질적으로 책임있는 담당 과장과 국장의 역할은 무엇일까? 세부사항은 담당자에게 맡기더라도 큰 틀의 절차와 시기를 조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형식을 마무리 짓는 회의를 마쳤으니, 아마도 그들은 곧바로 잊어버렸을지 모른다. 절차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산업무의 어려움과 바쁜 일정이, 또한 과중한 업무로 인해 시간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가 모르랴 공무원들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얼마나 노력하고 수고하는지를…. 그러나 일에는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 있다. 절차와 시기가 그것이다. 이 글은 어떤 위원회를 폄하하기 위한 지적이 아니다. 유사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다수의 위원회 활동에 관하여 다같이 반성해 보자는 것이다.

모든 민간 참여 위원회가 그 본래의 역할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 간절히 바라건대 올 연말에 제대로 된 심의자료가 있는 위원회 소집 연락을 받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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