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일부터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돼 금융과 보험을 제외한 삶에 필요한 전 분야에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100일, 전국적으로 481개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강원도에서도 12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됐다.

이처럼 협동조합 설립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타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 극단의 이윤추구로 상징되는 자본주의 시장질서 문제점을 극복하고, 함께 협력해 공익(公益)과 공익(共益)을 추구하며 공동체를 복원할 수 있는 협동조합. 이런 협동조합이 많이 만들어지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제도화 = 성공'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음에도 마치 협동조합을 설립하기만 하면 모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류가 형성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협동조합은 일반 기업처럼 자본결합이 아닌, 인적결합을 통해 만드는 사업체이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공통의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의 결합이 선행되지 않으면 협동조합은 출발 할 수 없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서는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해 공통의 사회, 경제, 문화적 욕구 등을 해결하고자 주민이 만든 자발적 조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체가 아니라 공통의 필요와 욕구, 열망, 사회적 필요 등을 해결하는 게 목적인 사업체란 뜻이다.

또한 돈이 많은 특정인이 지배권을 행사하는 게 아니라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구성원 모두가 조합의 주인이며, 동일한 의사결정권을 갖는다는 뜻도 담고 있다. 사업체이긴 하지만 항상 이윤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다. 협동조합의 원칙 중 하나인 '비조합원 이용금지' 또한 협동조합은 공통의 필요에 의해 만든 자발적 조직이기에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협동조합사업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협동조합의 첫 출발은 기본법에서 규정한 5인 이상이 모여 정관을 작성하는 게 아니라, 공통의 필요와 욕구, 열망, 사회적 필요 등을 가진 사람을 모으거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돼야 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이러한 공통의 문제를 협동조합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지 점검해야 한다. 가능성이 보인다면 조직화되거나 공감대를 형성한 사람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알아가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공동소유, 민주적 운영 등 협동조합의 정의와 가치, 원칙에 담겨 있는 내용 자체가 생소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공통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사업은 어떤 것인지, 그 사업은 가능성이 있는지,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조합원규모와 출자금 규모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출자금만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없다면 자금 조달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검토해야 한다.

더 나아가 협동조합 유형 중 가장 효과적인 유형은 무엇인지, 사업운영에 적합한 고용인원은 몇 명인지, 신고 또는 인가 신청을 위해 필요한 법적 절차는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 이는 모두 발기인이 정관을 작성하고 설립동의자를 모집하는 법적절차 이전에 이뤄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사전 절차가 얼마나 성숙했느냐에 따라 협동조합의 성패도 나뉜다는 것이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으로 협동조합 법인격을 쉽게 취득할 수 있지만 협동조합은 법인 성격보다 필요한 사람이 만든 결사체 성격이 더욱 강하고, 결사체이었을 때 성공 가능성이 높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협동조합, 그 중심에는 제도가 아닌 사람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