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과일과 야채로 가득한 바구니를 내어놓고 앉아있는 아주머니들과 할머니, 늘 계절과 상관없이 고무장갑을 끼고 투박한 앞치마를 두르신 생선가게 주인들, 풍겨나오는 각 식재료에서 나는 냄새들과 한바퀴 돌고나면 온갖 구경을 다 할 수 있었던 곳. 내가 기억하는 시장은 그런 곳이었다.

지금도 풍물시장에 장이 서면 분수대에 차를 세우고 사무실로 오는 길에 눈을 유혹하는 것들로 지체되기 일쑤이곤 하는데 대형마트 보다 훨씬 많은 어르신들이 장을 보시느라 바쁘다.

도시는 팽창하고 생활수준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고속성장을 하는 사이 지금은 전통시장으로 이름이 바뀐 우리네 시장상인들은 살림살이가 나아지셨는지 염려스럽다. 시장의 흐름이 얼굴을 대면하고 흥정하는 시장이 아니라 정보와 포장으로 상품을 구매하는 유통사회로 오면서 전통시장이 차츰 잊혀져간다.

시장경제의 효율성이라는 면에서만 고려한다면 대형유통업체에 밀려나 소비자의 발걸음이 뜸해지고 있는 전통시장은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전통시장은 경제논리로는 풀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름 그대로 전통이 있고 정서가 담긴 곳으로 만남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곳뿐만 아니라 토속적인 것을 향유하는 정서순화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시장 위기는 국내 유통시장개방으로 다국적 대형유통업체가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됐다. 풍부한 자금력으로 다양한 상품구색, 첨단 유통시스템, 국제적인 구매력과 공급처 등을 바탕으로 소비자 생활 가까이 접근하면서 중·소도시뿐만 아니라 배후지역까지 전통시장 상권이 크게 위축됐다.

하지만 전통시장과 상인들은 이러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낡은 건물시설과 환경, 영세한 규모, 비효율적인 운영 등으로 대형화되고 첨단화되는 유통환경에 대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시장 내부의 열악한 환경도 문제다.

노후된 시설과 비위생적인 관리로 이미 쾌적하고 청결한 대형유통업체를 경험한 소비자는 전통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 주차장, 화장실, 휴게실 등 편의시설 부족, 노후화된 건물 위험성 등은 소비자가 대형유통업체를 이용할 것인지 전통시장을 이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난제에도 불구하고 전통시장이 지역경제의 중심에서 하고 있는 역할들을 가볍게 볼 수 없다. 직·간접적으로 수많은 종사자들의 생계가 걸려있으며 도시중심에서 시민들과 가까이 있다는 입지적 특성,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중·저소득층의 저가 상품구매 기회제공, 인근지역에서 농어민이 생산한 농수산물과 지역특산물 모두 전통시장이나 지역 상점가가 주요판로가 돼 지역경제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통시장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중·소유통상인들의 생존권 보호 차원에서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전통시장의 부활은 다른 사람이 아닌, 시장 주체인 상인들에게 달려있다. 변화된 소비자의 욕구에 대응하고,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서비스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정부 지원정책으로 온누리 상품권은 전국 공동 전통시장 상품권 사업으로서 소비자 및 상인의 편의성과 전통시장 매출액이 증대되고 전통시장의 잠재적 고객확보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소비자시민모임에서도 명절에 즈음해 물가조사를 했고,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면 대형유통업체에서 준비할 때 보다 얼마나 저렴하게 상차림을 준비할 수 있는지 자료를 통해 시민들에게 홍보하고 있다.

시장상인들의 자구노력과 정부차원의 지원정책, 지자체 지원 등 이런 노력이 협력한다면 남은 역할은 소비자의 몫이다. 시장변화에 떠밀리다시피 대형마트에서 지갑을 열었던 소비자는 뒤에 남은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볼 때가 됐다.

전통시장 침체로 지역경제 동반하락과 도시공동화, 소상공인들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번쯤 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통시장에서의 소비와 대형유통업체에서의 소비가 갖는 가장 큰 차이는 소비 뒤에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들이다.

유통이란 단어는 필수적으로 포장을 의미할 수 밖에 없다. 모든 포장된 상품을 구입할 수 밖에 없는 소비형태이다. 상품에 따라오는 많은 양의 포장재와 쓰레기를 생각하면 전통시장이 꼭 활기를 찾아야만 하는 또 하나의 큰 당위성을 찾게 된다. 정책과 지원, 자구노력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의 녹색소비가 시장을 바꾸는 힘이 되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