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떤 부부가 남편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며 빠른 시간 안에 고쳐달라고 진료실을 찾았습니다. 막연한 주문에 성격을 고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설명 드리던 중,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들으면서 진료 중에 눈물을 참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이유는 얼마 전 부인은 암 말기 진단을 받았고 이제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남편의 욱하는 성격 때문에 하나 밖에 없는 자식과는 서로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나빠져 있는 상황이고, 아내로서 엄마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죽기 전에 부자 두 사람의 관계를 어느 정도 회복시켜 놓는 것인데 남편의 성격이 바뀌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정말 소설에 나오는 슬픈 이야기 같은 상황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지 못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고집스럽고 급한 성격의 남편이 아내의 말에 어렵게 정신과에 발걸음을 한 것은 아내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암으로 시한부를 선고 받으면서 자신의 병을 걱정하기보다는 본인이 죽고 난 후 남게 되는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갈까를 먼저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제 경우라면, 내가 연결 끈이 돼 이루어진 가족이나 친구들, 나 없이 그 연결 끈이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져 봅니다. 내가 어느 정도 위치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아내가 없는 상태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가족의 끈을 얼마나 유지 할 수 있을까가 죽어가는 부인이자 엄마가 걱정하는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입니다. 좋은 관계든 좋지 않은 관계든 만들어지고 그 관계를 연결하던 끈이 하나 없어지면 또 다른 상황의 끈이 연결되고 그 끈의 색깔이 달라집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나의 연결 끈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중간에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을 때 수월하지만 중간 끈이 끊어졌을때 상황은 나의 책임입니다. 그 상황을 해결해야하는 것도 자신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