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진이를 생각합니다. 용진이는 제가 2개월 동안 한글과 컴퓨터를 가르친 열아홉살의 장애인입니다. 용진이에게는 병이 있었습니다. 영국의 스티븐 호킹 박사의 병처럼 근육이 수축되는 병입니다.

병실에 있는 아이의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한 방안에 누워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용진이는 제 목소리를 들으면 눈이 반짝반짝 빛나며 반가운 얼굴로 미소 짓곤 했습니다. 글자를 배우면서 알게 된 이름들이 마냥 신기한 듯 항상 단어장을 품에 안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용진이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 용진이가 가망이 없다네요. 이번 한해를 넘기기 어려울 것 같아요." 하면서 용진이를 놓아주어야겠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용진이가 사는 동안 조금만 더 즐겁게 살 수 있도록 공부를 가르쳤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어머니께서 포기한다는, 더 이상 희망을 심어주지 말라고 하는 것을 보고 이해는 하지만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시간은 다 됐고 용진이의 해맑은 눈빛을 보며 채 마지막 인사도 건네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우리가 약속한 컴퓨터 수업시간은 끝난 것이지요.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용진이를 생각하니 미안한 생각과 또 만나자는 인사를 못할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용진아 정말 미안하구나, 강사 활동을 하며 너를 만나 나는 너에게 희망을 얻었는데… 더 이상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정말 미안하구나"

며칠 후 하늘에서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용진이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용진이는 늘 키보드를 안고 늘 누워 살아온 아이였습니다. 선생님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던 아이였습니다. 그렇게 맑은 하늘에서 비가 오던 날, 용진이는 키보드를 품에 안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같이 했던 짧은 시간 속에 아이의 희망같은 컴퓨터 공부가 끝나고 아쉬워만 하던 그 초롱한 눈망울, 오늘처럼 이렇게 파란 하늘을 볼 때면 선생님을 내려다보는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을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음 짓고 있는 것 같아, 가끔 하늘을 쳐다봅니다. 용진아, 미안하다. 용진이가 보내온 편지 평생 가슴에 묻고 살겠습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선생님께
　
　온갖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들은 나를 웃기려고 애썼고
　나와 놀아도 주었습니다.
　재미로 하는 놀이도 있었고 심각한 놀이도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모두들 떠났습니다.
　함께 놀았던 그 자리에 나만 쓸쓸히 남겨둔 채.
　무엇이 재미로 하는 놀이였고
　무엇이 심각한 놀이였는지 나는 몰랐습니다.
　혼자 남은 내 귓가에는 웃음소리가 메아리쳤지만 내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왔습니다.
　선생님은 별났습니다.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를 울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울어도 선생님은 내버려 두었습니다.
　놀이는 끝났다는 말만 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려주었습니다.
　
　내가 흘린 모든 눈물이 기쁨으로 바뀔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