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가 시설관리공단(지방공기업) 설립을 위해 타당성 용역을 의뢰한 곳은 '경영지도법인 지방공기업평가원'(이하 평가원)이라는 다소 긴 이름의 행정안전부 산하 단체이다.

그러나 평가원은 신규 공기업의 설립 타당성을 조사하거나 용역을 수행하는 단체가 아니다. 평가원의 설립목적은 "지자체 및 지방공기업의 경영지도·자문 및 평가업무를 전문적으로 지원"하는데 있다고 홈페이지(www.kolmi.or.kr)에 스스로 밝히고 있다.

원주시는 전임시장 재임 8년 동안 3차례 지방공기업(도시공사 또는 시설관리공단) 설립을 시도했는데 그 때마다 평가원의 전신인 한국자치경영평가원에 용역을 맡겼다. 또 애물단지였던 원일프라자(현 시민문화센 터) 활용방안 용역도 맡겼는데 평가원은 도서관이 적합하다는 황당한 용역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평가원은 용역(4회) 때 마다 발주처인 원주시의 뜻대로 결과물을 납품했고 원주시는 그 결과를 명분으로 공기업 또는 도서관 건립을 시도하다 여론에 밀려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2007년에는 시장과 시의회 의장이 함께 시설공단 설립을 주도하여 설립절차를 대부분 끝내 놓고도 2008년 1월 현 정부 출범직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강력한 공기업 민영화·축소 정책을 발표하자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 역시 꼬리를 내린 일도 있다.

평가원은 지방자치제 실시를 앞두고 있던 1992년 내무부 산하 '지방자치경영협회'로 발족해 지방공기업평가업무 전담기관으로 지정받았으며 2002년 '한국자치경영평가원'으로 이름을 바꾼데 이어 2011년4월 다시 현재의 평가원으로 개명했는데, 이때 단체명에 '경영지도법인'임을 명기하여 앞서 언급한대로 다소 긴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평가원은 현재 전국 16개 광역시·도 기획관리실장들이 각각 4명씩 윤번제로 이사직을 맡는 등 발족당시와 다름없이 행정안전부(내무부)의 감독을 받는 산하 단체로 존속하고 있다.

이와 같이 평가원은 기존에 존재하는 지방공기업의 경영평가가 주 업무이다. 만약 평가원이 지방공기업의 설립타당성 용역까지 맡게 되면 나중에 자기가 한 일을 자신이 평가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대로 원주시는 논리상 맡길 수 없는 곳, 다시 말해 사실상 그런 일을 수행할 자격이 의심스러운 단체에 4천만 원의 거금을 들여 다시 5번째 용역을 맡겼고 그 용역결과를 명분삼아 전임 시장이 몇 차례 시도하다 포기한 공기업을 같은 방법으로 설립하려 하고 있다.

공기업은 사실상 주인 없는 독점기업이어서 주인보다는 종사원들의 이익에 치중하는 등 알고도 못 고치는 병폐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애물단지가 된다. 따라서 공기업은 없을수록 좋고 만들지 않는 게 상책이다. 이는 경제학에서도 인정하는 것으로 현 정부 출범 초 국가공기업을 대거 손보려 했지만 덩치가 커진 공기업들의 반발로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를 통합하는 것으로 끝내고 말았다.

전국의 많은 지자체들이 선거운동 보답용 또는 퇴직공직자의 자리 마련이란 비판을 무릅쓰고 무슨 업적이나 되는 것처럼 앞 다퉈 공기업을 설립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 확대와 임금인상 그리고 경영수지를 이유로 관리시설이용료 인상까지 독점 공기업의 고질적인 병폐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기업이 없는 원주시로선 정말 다행한 일인데 왜? 또 시설관리공단인가.

원주시가 용역을 평가원에 맡긴 것부터 잘못된 것이고 납품된 결과도 신뢰할 수 없다. 원주시는 이번 용역(5회)까지 대략 2억 원에 가까운 예산을 평가원에 퍼주었는데 잘못된 용역발주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한번 잘못 만든 공조직은 폐지하기도 쉽지 않아 결국 후손에게 애물단지를 물려주게 된다는 점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공기업은 만들지 않는 게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