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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다, 내고향 원주
2012년 05월 14일 (월) 정혜원 아동문학가/성신여대 강사 wonjutoday@hanmail.net
   

봄이라고 하기에도 아쉽고 짧은 봄이 가고 있다. 변덕스럽고 성질 급한 봄은 한여름을 불러내기라도 하듯 한낮의 햇볕이 제법 따갑다. 추운 겨울에도 잘 이겼는데 봄이 고개를 드니 마음이 더욱 산란하다.

원주를 떠나온 지 오년이 갓 넘었다. 공부하느라 원주에서 서울로 통학하기도 하고 서울에 있기도 했지만, 원주에 적을 두고 다니는 것과 서울에서 사는 것은 정말 다른 기분이다. 서울에서 늦은 밤차를 타고 원주 터미널에 내리면 공기부터 다르고 엄마의 품처럼 편안하다는 것을 오래 전에 느끼긴 했지만, 서울에서 계속 바쁘게 살다 문득 삶의 쉼표를 찍고 싶어진다.

이제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서울에서의 삶은 정말 여유가 없다. 집 베란다에서 보면 관악산 턱밑까지 집들로 빼곡한 것을 보면 숨이 막힌다. 어디도 여백은 없다. 차가 도로에 많은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한 뼘의 공간이라도 생기면 서로 차를 들이댄다.

또 비싼 외제차를 탄 젊은이들의 곡예운전에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원주에서 살 때 없던 피해의식까지 생겼다. 날마다 눈뜨면 생기는 사건사고 때문에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의심스러워진다. 노숙자가 단지 남루한 행색을 하고 있을 뿐인데 앞에서 걸어오면 저 사람이 날 헤치지 않을까 하는 못된 생각까지 든다.

사실 밤늦게 서울역에서 전철을 갈아탄 적이 있는데 노숙자가 아무 이유 없이 내 어깨를 세게 치고 간 적이 있었지만 대항하지 못했다. 직장에서 관계도 그렇다. 뭔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바로 배신하는 사람들, 자신의 작은 이익에도 갖은 잔꾀와 모함을 일삼는 사람들. 정말이지 인간적 면이 상실된 무채색의 도시다.

물론 그 사이 사이에도 행복을 나누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겠지만 여하튼 내게 포착된 서울은 그렇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 '배움'이 무엇이며, '인간다움'이 무엇인가. 배움은 결국 채워도 채워도 넘쳐 흐르는 온갖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것인가.

그래서 인간다움 같은 것쯤은 깊은 심연(深淵)에 자물쇠를 채운 것인가. 굳이 산업화, 정보화 사회로 급속하게 진입하다보니 이런 현상들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제 실증이 난다. 그렇더라도 인간이면 인간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온갖 난무하는 욕망들 틈바구니 속에서 외로운 궤변론자가 되어 가거나 겉도는 주변인이 되어 가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조금씩 가슴앓이 증상이 심해지고 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난 조금만 더 있다가 원주에 내려가 작고 예쁜 집을 짓고 좋은 동화를 쓰며 살거다'라고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으니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그럼 내 고향 원주는 내게 어떤 의미일까. 아버지가 원주에서 은혜를 받아 나를 얻었다고 하여 이름도 은혜 혜(惠), 근원 원(原)이라 지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지어준 귀한 이름에서 아버지에게 평생 받을 사랑을 다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일단 내 이름에서 원주와 나는 뗄 수 없는 관계맺기를 하고 있다는 것에 한 표쯤 줄 수 있을 거다. 원주에 살 때는 정말 몰랐다. 좋아하는 바다가 있었으면 좋겠고, 대도시처럼 번쩍이는 백화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진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것은 다 신기루 같은 허상이었다.

코 옆에 백화점이나 쇼핑센타가 있어도 뭐가 그리 바쁜지 한번 가게 되지 않는다. 살다보니 뭔가 기분 나쁘게 조금씩 조여 들어오는 것을 느낄 쯤 원주는 전에 없이 '그리움'이란 단어가 되어 다가온다. 지치고 힘들 때 돌아갈 수 있는 곳, 부모님이 계시고, 좋은 친구와 따뜻한 지인들이 있는 곳이란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어쩌다 꿈에 구룡사 계곡이나 웅장한 치악예술관이 보인다. 아마 원주에 있을 때 많이 다니던 곳이라 무의식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같이 있거나 가까이 있을 때 그 소중함을 모르듯이 조금 떨어져서 보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내 삶의 원천이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가끔씩 페이스북(facebook)으로 찾아주는 문인협회 문우와 선배문인들이 더 반갑게 느껴진다. 각박한 도시 삶에서 따뜻한 정이 그리워져서 일까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고향이 그립다. 지난 16년간 문인협회에서 하던 수많은 행사에 감초처럼 꼭 끼어서 활동했던 일들이나 추운 겨울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해주던 선배문인들, 이 모든 것이 추억 속에 갈피갈피에 끼워져 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내려갈 때까지 문인협회 문우와 선배문인들이 모두 행복한 글쟁이로 있었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갖아본다. 그럼 나도 행복한 동화작가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립다, 원주 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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