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업 정리하고 치악산 산골에 정착 10년간 와인 연구

치악산 자락의 인적을 찾을 수 없는 깊은 산 속, 술의 매력에 흠뻑 취한 남자가 1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술을 빚고 있다. 게다가 재배가 까다로운 토종다래로 고품질 와인을 생산하고자 고집스런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 치악산 자락에서 10년째 토종다래 와인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노동호(왼쪽) 씨와 아내 김유경 씨

소초면 흥양초교 정문을 지나서 구불구불한 마을 안길을 수㎞ 달리고, 사륜구동 자동차가 아니면 올라갈 수 없는 비포장길 앞에서 차를 세웠다. 간만에 운동이나 할 겸 등산화를 챙겨 신고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곧 입이 떡 벌어지게 가파른 길이 턱하니 버티고 서서 멈칫하게 만든다. 잘 따라주지 않는 다리를 부여잡고 숨을 헐떡이며 걷고 또 걸으니 도무지 사람이 살지 않을 것만 같은 곳에 집 한 채가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술에 빠져 산다는 주인공 노동호(62) 씨와 그의 아내 김유경(55) 씨가 걸어오느라 고생했다며 반갑게 맞이한다.

노 씨는 서울에서 꽤 규모가 큰 식품공장을 운영하고 건축업에도 뛰어들었던 수완 좋은 사업가였다. 그런 그가 왜 이렇게 깊은 산골짜기까지 들어와 고생하며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노 씨가 이곳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술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집에서 술을 빚는 것을 지켜보며 술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자연스럽게 술을 즐기게 됐다. 노 씨는 "평소 술을 즐겨 찾았고, 좋은 술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언젠가 술을 빚으며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고 말한다.

이왕 술 만드는 일에 뛰어들겠다고 결심한 이후 평범한 술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좋은 술'을 만들어보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이곳에 왔다. 고향인 경상도를 비롯해 경상도,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 등 곳곳을 찾아가 술을 빚기 적합한 곳인지 따져보게 됐다. 눈에 들어온 곳이 치악산 자락. 술 맛의 80%를 좌우하는 것이 바로 물인데 이곳에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깨끗한 물이 풍부했다. 그리고 산기슭에 자라고 있던 토종다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지천에 깔려있던 다래를 보고 술을 빚기에 좋은 재료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눈이 번쩍 띄었다.

지난 2002년 정착한 이후 곧바로 다래를 이용한 연구에 들어갔고 와인으로 만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와인으로 유명한 유럽에서 주원료인 포도의 당도는 20브릭스 정도로, 당도가 높을수록 좋은 맛을 낸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14~16브릭스로 못 미치는 편이지만 다래는 유럽에서 재배되는 포도의 당도와 근접해 와인을 만드는 원료가 되기 충분했다.

문제는 와인을 만드는데 필요한 만큼의 다래를 재배하는 것이었다. 좋은 품종의 다래를 심었지만 재배하는 것이 까다로웠다. 3천평에 다래를 심었는데 지금은 1천500평에 400~500주 정도가 남았다. 하지만 얻는 것이 많았다. 여러 품종을 가져와 접을 붙이고 연구를 하다보니 낙과율이 적고, 당도가 높은 다래가 열매를 맺기 시작했으며, 지금 남아있는 나무가 바로 그런 나무들이다.

또한 관내 농가들이 다래재배에 참여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10년 전 원주에서 처음으로 다래를 재배하기 시작한 이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원주시농업기술센터에 다래가 소득작물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협력체계를 구축해 나갔다. 지난 2008년에는 원주시의 '토종다래 지역특화연구와 상품화 기술개발 사업'이 농촌진흥청 공모에 선정되는데 영향을 미쳐 농가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 자신 또한 원주시로부터 덕과 묘목, 와인 생산 기구 등을 지원받아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현재 원주시에서 다래를 재배하고 있는 농가는 20여곳. 전국 재배면적 15㏊ 가운데 원주에서만 3㏊가 재배되고 있다.

현재 과실주 면허, 전통주 면허, 천연양조식초 면허 등을 취득하며 술 전문가가 된 노 씨는 아직 만족할 만큼의 다래를 생산하고 본격적인 판매가 이뤄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 씨는 "지인들에게 나눠줄 정도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수준"이라며 "톤 단위의 다래가 생산돼야만 원하는 만큼의 와인을 만들 수 있는데 향후 2~3년 안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시간과 정성을 들여 발효된 술이 좋은 맛을 내듯 나의 삶 역시 그것을 추구하며, 앞으로도 내가 만족할 만한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다래는 와인 뿐만 아니라 생과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지역경제 활성화와 농가소득에 보탬이 되는 작물로 거듭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노 씨는 아내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10년이란 시간 동안 벌어뒀던 돈을 털어 쓰고, 아내를 고생시켜 늘 미안했다"며 "모든 것을 이해해 주고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준 아내는 내 삶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박동식 기자 dspark@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