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와인이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은 포도재배에 있어서 자연환경(토양, 기후조건)과 양조기술, 거주인구, 판매여건 등을 포함하여 와인생산유통에 수반되는 일체의 환경요소에 대한 분석을 통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루아(Terroir)'라고 한다. 각 지역마다 환경요소가 다르기 때문에 지역 특색에 맞는 테루아가 있다. 다년간에 걸친 경험으로 얻어진 지식에 정성을 더해 최상급의 와인이 탄생되는 것이다.

지역문화예술을 키우는 것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원주문화재단 설립 목적이 지역문화예술진흥을 위한 지원에 있기 때문에 지역예술인들은 쌍수를 들고 재단의 탄생을 환영 했다. 하지만 지금 많은 지역문화예술인들은 우려의 시각으로 원주문화재단을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재단을 운영하는 상식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재단이 정상적인 사업을 하려면 우선 예산이 확보돼야 하는데 원주문화재단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가까운 춘천은 올해를 기준으로 연간예산 70억원, 지원사업비 총액이 10억원, 그 중 문화예술지원사업에 4억5천만원을 지원 했는데, 원주는 연간예산 4억원에 2012문화예술지원사업이 1억8천만원, 사무실운영비 1억9천만원이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

올해 원주문화재단 문화예술지원사업 선정결과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자 한다. 올해 지원사업 신청을 받고 있을 즈음 적은 예산 때문에 선정심사의 어려운 점을 토로하는 재단 관계자에게 그럴수록 심사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주문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 그 자체다.

심사 기준과 원칙을 찾아볼 수 없었다. 평가항목이었던 사업계획 실현가능성, 프로그램의 예술성, 사업추진주체의 수행능력, 해당분야 발전 기여도와 파급효과를 재는 척도로 심사위원들에게 제공된 것은 신청서뿐이었다. 심사위원들은 단지 이 페이퍼만을 기준으로 심사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페이퍼에 어떻게 예술성과 성장가능성과 예술현장의 활성화를 담을 수 있었겠는가? 올해 춘천문화재단 지원사업 심사위원장은 "페이퍼는 예술이 아니다. 현실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균형 잡힌 안배가 오히려 공정한 것이다."라고 심사평을 했는데 이는 지역예술현실을 잘 알고 심사에 반영하는 것이 옳다는 지적이다.

적어도 이분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이었기 때문에 지역예술의 '테루아'를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결과적으로 낙제점에 가까운 이번 지원사업 선정결과에 대해 재단 관계자는 지역예술인들에게 적절한 해명과 진심어린 사과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큰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재단운영에 대한 아쉬움이 많지만 그 중 한 가지는 적어도 이 사업 전에 이사들의 의견을 듣는 노력이라도 했었다면 재단이사들이나 지역예술인들이 겪었을 자존심에 대한 상처는 조금이라도 덜 생겼을 것이다.

원주문화재단이 제 역할을 하기 바란다면 우선 현재 절대 부족한 예산부터 확보해야 한다. 재단 이사장인 시장께서 취임 이후 문화예술 관련 예산을 크게 늘리겠다고 공언 했는데 아직까지 눈에 띠는 변화를 찾기 힘든 것이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이다.

또 재단 사무국은 좀 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지역예술의 '테루아'를 공부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정책을 만들어 가야 한다. 겸손한 자세로 지역예술인들과 스킨십을 강화해 소통부터 해야 한다. 사무국이 앞장서서 새로운 페러다임을 제시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할수록 스스로 옥상 옥을 만들려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고 지역예술계와 괴리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재단사무국은 어디까지나 파운데이션으로서의 본연의 임무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차제에 재단에 권고하고 싶은 것은 3년차까지 가지 말고 빠른 시일 안에 재단을 민간에 넘기라는 것이다. 도내의 타 문화재단을 보더라도 민간 전문가가 재단을 운영할 때 올바른 정책과 보다 효율적인 지원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루속히 백년을 내다보는 정책으로 무장하고 지역문화예술을 애정 깊은 손길로 어루만져 주는 원주문화재단의 모습을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