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 있게 한 것은 아버지"

고 김충렬 박사 장남
국내·외 동양철학계 대부인 중천(中天) 고 김충렬(2008년 3월 4일 타계) 박사의 뒤를 이어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아들 김정일(48·중천철학재단 대표) 박사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영문판 철학서적을 출판했다. 문학작품 등 일부 국내·외 작품을 영문으로 번역해 출판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철학서적을 애초부터 영문으로 출판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 박사가 쓴 책은 '시공여인생2(時空與人生·Space, Time and Life 2)'로 부친이 43년 전 불혹의 나이에 쓴 첫 저서 '시공여인생'에 이어 같은 제목을 쓴 두 번째 저서로 김 박사는 5살 때 아버지의 첫 책 표지에 붓글씨를 남기기도 해 의미가 크다.

부친이 동양철학의 아버지로 역량을 떨쳤다면, 아들은 동서양 철학을 두루 섭렵한 인물로 꼽힌다. 김 박사는 미국 캔자스주립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학사 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으며 동서비교철학에 대한 학식을 갖췄다. 이후 "박사과정은 국내에서 밟았으면 좋겠다"는 부친의 조언에 따라 귀국해 동양철학에 눈을 떴고, 동국대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김 박사는 40세에 최종 심사에 통과했으며, 그의 논문은 'Beyond the Closedness of Causality: A Comparative Study on Mind(인과성과 폐쇄성을 넘어서: 마음에 대한 동서철학 연구비교로)'이다. 학위 논문으로는 드물게 영어로 쓰여졌으며, 미국 실용주의철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찰스 샌더스 퍼스와 존 듀이의 사상에 끼친 동양철학을 분석하고, 서양철학의 인식론적 한계를 비판했다.

이번에 쓴 시공여인생 2 역시 동서양철학의 경계를 허무는 내용을 담았다. 부친의 저서가 중국의 인식론과 형이상학을 주제로 쓴 글이었다면, 김 박사의 저서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인지과학의 테이블 위에서 논의한 '입체파 철학'이다. 그동안 많은 서양학자들이 그들의 잣대로 동양철학을 비판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 저서는 동양학자의 눈으로 동양철학과 그와 유사한 실용주의를 기본으로 서양철학의 인식론적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김 박사는 "아버지는 나를 철학의 세계로 뛰어들게 했고, 오늘날의 나를 있게 했다"며 "국내 학자의 이론이 영문으로 쓰여 외국에 나간 적이 없기 때문에 큰 성취감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5남매 중 넷째(장남)로 태어났다. 현재 부친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는 중천철학재단 대표를 맡아 지정면 안창리에 중천철학도서관 건립을 추진 중이며, 중국 섬서사범대 연구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 박사는 철학과 부친에 대한 반발로 물리학을 택했으나 캔자스주립대 유학 중 철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그동안 캘리포니아대학교, 강원대, 동국대, 한국어외대 등에 출강했으며, 서울·경기 지역, 원주문화원, 남산도서관 등에서 시민강좌를 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돈키호테 철학' '동양의 음양생식론과 현대 생명공학의 비교 검토' 'Dewey's and Chuang Tzy's epistemology of 'oneness'' 등이 있다. 가족은 경기도청 도서관 정책팀장으로 근무하는 아내 류희경(44) 씨.

시공여인생2, 170쪽, 글로벌콘텐츠. 국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의 맨 뒤쪽에 한글요약 부록을 첨부했다.　
박동식 기자 dspark@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