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서질 않는 간이역에 키작은 소나무 하나 기차가 지날 때마다 눈을 감는다" 무정차역의 풍경을 잔잔하게 그린 '기차와 소나무'의 가사를 보면 한적한 시골역을 그대로 떠올린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간현역은 지난달 21일 기차와 소나무에 등장하는 모델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되었다.

1940년 4월 1일 개통한 뒤 70년 넘게 원주와 서울을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였던 간현역. 철로 변경에 따라 간현역에는 더 이상 기차가 정차하지 않는 역이 되었지만 역 주변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역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간현역이 폐쇄되고 나서 가장 아쉬운 사람들은 고향을 지키며 기차와 함께 생활해온 지역 주민들이라는 생각에 간현 사람들을 만나 기차와 관련된 역사를 들어봤다.

일제시대 개통된 간현역은 지역 주민들에게 육로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그리고 관광객들을 싣고 와 지역경제를 살려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간현역은 간현은 물론 안창 판대 가곡 등 지정면 일대 주민들이 서울로 갈 수 있었던 소중한 교통편으로 교통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고 한다. 간현에서 태어나 평생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이진규(73)씨는 "60~70년대에는 원주로 나가는 도로가 생기지 않아 교통이 많이 불편했지만 기차 덕분에 서울 가기는 더 편했었죠. 인근지역에서 나룻배를 타고와 기차를 타고 가느라 북적이던 간현역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고 말했다.

80~90년대는 간현관광지가 개발되면서 서울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여름에는 기차가 도착하면 관광객들이 쏟아져 내렸고 간현역에서부터 유원지로 가는 길이 관광객들로 가득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여름철 휴가기간이면 식육점들이 하루에 300㎏ 이상 고기를 팔 정도였다고 하니 간현역이 이 곳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간현 토박이인 이연창(66)씨는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쏟아져 거리를 메우던 모습이 엊그제처럼 느껴져요. 사람들이 문턱이 닳을 정도로 상점을 찾았죠. 간현은 기차가 정차하는 관광지라는 특수성 때문에 지역주민들도 먹고 살았으니까요. 갑자기 역이 폐쇄된다는 소식에 섭섭했는데 얼마 전 철길에 있는 고압선을 다 걷고 나니 실감이 나더군요. 한평생 눈에 익었던 풍경이 달라져 어색하기도 하고…."

기차표가 전산화되기 훨씬 전에는 서울과 원주를 오가는 무임승차족도 많았다고 한다. 지정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원종호(48)씨에게는 젊은 시절 친구들과 무임승차한 추억이 남아있다. "젊은 시절 호기로 몇 번 무임승차를 했었죠.

그때 당시에는 젊음이라는 든든한 배짱으로 몰래 기차를 탔지만 이젠 아련한 옛일이 되었죠. 덕소역에서 몰래 기차에 탄 뒤 간현역에 정차하기 직전 속도가 늦춰지는 지점에서 몰래 뛰어내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겨울이면 앉은뱅이 썰매를 끄는 꼬챙이를 만들려고 철로 레일위에 못을 올려놓아 납작하게 만들기도 하고, 여름이면 친구들과 함께 레일위에 귀를 대고 기차가 언제 도착할지 내기하기도 했었죠. 간현 사람들 이라면 누구나 기차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겁니다."

간현역 주변은 논밭이 주를 이뤘고 농토를 중심으로 100여가구가 모여 살았다고 한다. 역 앞에는 도랑이 흘러서 장마철에는 판대와 안창 사람들을 싣고 다니던 나룻배가 정박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도랑을 모두 복개해 지역 어른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이야기가 됐다.

간현역 인근에 있는 오창수퍼는 오창환(84) 유영순(75)씨가 운영하는 가게로 할머니가 24살 되던 해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52년째 가게를 지켜오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역 바로 앞에 터에서 한번 자리를 옮겼지만 간현에서 가장 먼저 가게를 열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가게를 열고나서 물건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기차가 필수였다고 한다 "수퍼에서 파는 물건은 모두 기차를 타고 원주로 나가서 받아와야 했어요. 한번 나가면 가져오는 물건이 많았는데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내일처럼 거들어 줘서 쉽게 옮겨왔지요. 그 덕에 5남매를 모두 대학공부 시키고 이제는 두 늙은이가 쉬엄쉬엄 소일거리로 가게를 지키고 있습니다." 한동안 추억에 잠겨있던 오창환 할아버지도 거들었다. "열차로 물건을 싣고 장사할 때가 내 인생의 가장 황금기였어. 5남매가 원주로 학교 다닐 때 애용하던 통학기차였고…간현 사람들에게는 꽤 고마운 존재였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70여년의 간현역 역사는 지난해 말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하지만 간현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오랫동안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지난 2007년 폐쇄된 반곡역이 지역 화가들에 의해 색다른 갤러리로 재탄생했던 것처럼 간현역도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게 되길 기대한다.

이혜원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