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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계절
2011년 11월 14일 (월) 박기관 상지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wonjutoday@hanmail.net
   

파릇파릇 연둣빛 새순에 희망이 넘치는 봄, 장렬한 태양과 무성한 우듬지를 이뤄 녹음을 과시하던 정렬적인 여름이 언제이던가. 천산 만홍의 단풍이 뒤덮인 가을을 지나 어느새 떨어진 낙엽들이 발목을 감고 맴돌더니 길섶으로 맥없이 밀려나고 있다. 어제가 입동(立冬)이었으니 나뭇잎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그 혹독한 겨울나기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반복되는 계절이 주는 감흥과 반응은 다르지만,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잠시 상념에 잠기거나 일렁이는 그리움은 비록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삶의 도정에서 반가운 만남과 아쉬운 이별의 추억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내게도 유년의 고향이 있고, 그 유년시절 '덕일'이라는 친구와의 만남과 이별이 가슴 한켠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겨울로 접어드는 이맘 때, 어머니께서는 내게 보자기 하나를 건네면서 심부름을 시키셨다. 그 보자기를 동네어귀 공동우물가 뒷집 작은 문칸 방에 놓고 오라는 것이다. 그 집이 누구네 집이라는 말씀도 안계셔서 전달하고자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에대한 궁금증이 있을법 한데, 나는 오직 온기가 채 가지지 않은 보자기의 내용물에만 관심이 있었고, 그 궁금증과 호기심에 굴복하여 우물가뒤에서 풀어보았다.

보자기를 풀자 실망하고 말았는데, 다름아닌 찬합에 담겨져 있는 따스한 밥과 반찬 그리고 빨갛게 익은 몇 개의 감이었다. 그 이후 가끔 우리집에서 밥을 먹곤 했던 덕일이가 친척집에 거처가 생겼고, 일하면서 학교도 다닐 수 있게되었다고 서울로 훌쩍 떠나버렸다.

밥을 제때 먹지 못한 탓인지 언제나 창백했지만, 웃으면 그토록 해맑았던 덕일이와의 인연은 그것이 마지막이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35년전의 덕일이는 지금의 결식아동이었던 셈이다.

결식이란 '끼니를 거른다'는 뜻인데, 1인당 국민총소득(GNP)이 2만달러를 넘어 선진국에 진입한 이 땅에서 아직도 밥을 굶는 아동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사실 밥을 굶는 아이들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1997년 1만 1천명이었던 결식아동수가 1998년 IMF 경제위기이후 급격히 늘어나 2002년 19만 7천명 그리고 지난해 방학중 급식을 제공받는 아이들은 48만명에 달한다.

오늘날 결식의 이유는 절대빈곤과 함께 부모의 실직, 부도 등으로 가족이 흩어져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경우와 집에서 가출한 경우, 소년소녀가 가장인 경우, 가족적인 이유와 사회적인 이유가 결합된 경우 등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결식은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으로 밥을 먹지 못해 신체적으로 건강한 성장을 저해하는 차원의 문제만 아닌 아동의 건강, 교육, 문화 심지어 부모로부터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포함해 아동으로서 누려야 할 많은 권리와 기회를 빼앗아 가는 것이다.

이제 결식아동은 단순히 밥을 굶는 아동이라기 보다는 아동으로서 누려야 할 보호받을 권리가 박탈된 아동이라고 해야 더 적절하다. 따라서 결식아동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것은 단순히 밥을 먹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신체적?정서적으로건강한 성장과 함께 아동이라면 당연히 누려햐 할 권리를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다.

풍요로움이 넘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풍요속의 빈곤처럼 밥을 굶고 있거나 척박한 밥상앞에 외롭게 놓여져 있는 아이들이 있다.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행복한 밥상을 마주할 수 있도록 결식아동에 대한 관심과 에너지를 쏟아야 할때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다가올 미래이기 때문에 미래를 가꾸지 않고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토록 강성하고 황홀하며 찬란했던 나뭇잎이 윤기없는 낙엽이되어 나뒹글고 있음은 올해도 머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이 한해가 가기전 우리 주변에 배고픔과 외로움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없는지 살펴보고, 그들에게 관심과 나눔을 실천해야 할때이다. 진정한 행복이란 나누어줄 때 느끼는 것이고, 나누면 나눌수록 탐스러워지는 기쁨의 하루 하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해거름 서풍에 낙엽 지는 어느날... 가슴 뭉클한 해후를 할 수 있다면, 물어볼 말이 있다. 덕일아! 밥 먹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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