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웅 베이스캠프 대표

처음 눈이 멀었을 때 주변에서 안마사가 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다른 시각장애인들과 비슷한 길을 걷기 싫었다. 장애인이라서 도전해 볼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는 벽을 넘어 꿈을 꾸고 싶었다. 그래서 어렸을 적 부터 꿈을 꿔왔던 발명품을 하나하나 머릿속에서 꺼내 구상만 하던 물건들을 만들어 냈다.

소초면 흥양리에서 빗물집수장치를 생산하는 베이스캠프 이기웅(51) 대표는 시력을 잃은 뒤에도 꿈을 이루기 위해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했다. 10년 전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었지만 다른 시각장애인들과 다른 삶을 개척해 왔다. 장애를 극복해 가면서 꿈을 하나 하나 이뤄가고 있지만 창업을 하고 나서 행복하기 보다는 더 많은 절망감을 느꼈다고 한다. "처음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난 직후와 현재의 절망감은 비슷합니다. 극복이라는 단어보다는 시력으로 인한 불편한 것이 숙달되고 몸에 익숙해진 것일 뿐 눈이 보이던 시절로 돌아가고픈 심정은 날이 갈수록 간절합니다."

현재 이 대표가 보유한 특허기술은 4개. 물탱크 내부에 설치하면 물을 정수해 주는 기능을 가진 '고봉이'를 시작으로 빗물집수장치인 '우물터'까지 물과 관련된 특허에 관해서는 비장애인을 능가하는 기술력을 보유해 남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창업을 시작할 때 수중에 있던 준비 자금은 고작 200만원. 사무실을 구하고 전화기를 설치하고 어엿한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일사천리로 진행될 줄 알았던 사업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지금도 사업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선뜻 주문을 하려는 수요처가 없어서 홍보에 주력하는 상태다. "사업계획을 세밀하게 세워야 했는데 준비가 덜된 상태였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죠. 5~6년이 지나면 사업이 자리잡아 안정적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비상의 시기라고 생각되는 지금이 더 두렵습니다."

이 대표가 발명한 우물터는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철에 집수장치를 설치했다가 하천이 범람하는 시기를 피해 방류하는 접이식 물탱크 시스템으로 적은 비용으로 침수 피해를 줄이는 목적을 거둘 수 있다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이상기후가 많다 보니 빗물을 효과적으로 배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이는 하수관 건설공사보다 저렴하게 설치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도심지에 내리는 빗물의 80%는 시멘트나 아스팔트에 떨어져 하수관으로 흘러들어 하수가 역류하게 되어 큰 피해를 입는 상황입니다. 우물터와 이동이 편리한 빗물집수장치가 앞으로는 침수 피해를 예방하는 유용한 장치라고 확신합니다."

발명품이 개인적인 용도 보다는 공익적인 목적으로 쓰이다 보니 관공서를 중점적으로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달 들어서는 빗물집수장치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는 서울시와 시민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홍보 활동에 나서고 있다.

특허를 4개나 보유하고 대학 창업보육센터에서 독립해 어엿한 중소기업으로 자리매김 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2006년 창업당시에는 제천의 대원대학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했다가 2008년 연세대 원주캠퍼스의 장애인창업보육센터 입주 정보를 알게 되어 사업장을 옮겼다. 일반 창업보육센터 보다 장애인에 대한 혜택이 많을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비장애인이 느끼는 벽보다 훨씬 더 높은 벽을 맛봤다.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을 받는 조건 조차 비장애인들에게 밀려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대출이 제한되는 경우가 다반사였죠. 아마 대출금을 상환하는데 있어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유리할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정말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죠. 주변인들에게 우스개 소리삼아 장애인이라서 혜택받는 것은 신제품 연구개발과제 채점에서 2점 더 받는 거라고 이야기 하곤 합니다."

이 대표는 남들보다 한발 앞선 아이디어로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 냈지만 상용화 되기까진 아직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직접 발로 뛰며 홍보에 나서고 있지만 장애인이기에 받는 시선은 아직까지 따가울 뿐이다. 지난달 중순 관공서를 직접 부딪혀 보자는 심정으로 강원도청 도지사실을 찾아갔을 때 그곳에서 보여준 반응은 흡사 맹인 앵벌이를 대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도지사님이 휴가 중이라는 이유로 사무실에는 한발자국도 못들어 간 채 자료만 주고 왔죠. 문틈 사이로 내다보는 시선에서 장애인만이 느끼는 참담함을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이 대표는 국내시장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픈 꿈을 간직하고 있다. 물이 없어 죽어가는 아프리카나 인도 등 제3세계 나라 사람들에게 쉽게 장착이 가능한 빗물집수장치를 보급하면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안정적인 느낌이 좋아 회사 이름으로 삼았다는 '베이스캠프'. 이 대표의 소망처럼 빗물을 이용한 발명품이 세계 곳곳에서 쓰이며 물부족으로 쓰러져가는 제3세계의 안타까운 생명을 살리는 상상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이혜원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