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철철 흘러 내리는 삼복더위에 구룡사에서 비로봉, 향로봉, 남대봉을 넘어 영원사를 거쳐 금대야영장까지 치악산 종주 20㎞를 포함한 200㎞를 완주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원주 전역을 누비는 기쁨을 안았던 것이다.

지난 해와 같이 금년에도 87명의 대원 중에는 팔순 노인도 있고 아홉 살 어린이도 있었지만, 특히 부부와 아들 딸 5인 가족이 2가구나 참여하여 더욱 뜻이 있었다. 왜냐하면 고향 사랑이나 나라 사랑, 더 나아가서 인류 사랑도 가정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첫날 출발 시 비가 와서 걱정이 되었으나 다행히 그쳤고 완주할 때까지 날씨가 좋아 복을 받은 것 같다. 작년에는 매지 임도를 걸을 때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비가 퍼 부어 그 장관에 탄복을 하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하여 아쉬웠는데 금년에는 원주시내를 조망하면서 우거진 송림과 낙엽송 그리고 시원한 물 줄기 곁을 지날 때 한기를 느끼며 도심 가까이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는 원주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복 받은 것 같았다.

제주 올레길까지 가지 않더라도 매지 임도의 우거진 아름드리 송림을 걸으면서 산림욕에 빠져 대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펼쳐져 있는 원주시가지와 연세대 캠퍼스를 관망하는 것은 선경(仙境)에 이른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할 만큼 소중한 순간이었다.

둘째 날은 귀래를 떠나 거돈사지와 법천사지를 거쳐 손곡리로 경유하여 부론초등학교에서 쉬었다. 작년에 쓴 글에 원주 사랑을 높일려면 단순히 걷는 것 보다는 문화와 역사를 알려주어야 한다고 제안해서인지 7회에는 많은 유적지가 행진코스에 포함됐고 또 가는 곳 마다 문화해설사가 간단히 설명을 해주어 젊은이들을 비롯하여 학생들에게 유익하였고 더욱 발전시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법천사에 있었던 지광국사현묘탑과 같은 국보 중에도 빼어난 원주의 많은 문화재가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중앙에 산재해 있는 것은 이유가 어떻든 원주시민의 수치이다. 우리 걷기대행진 대원이 중심이 되어서라도 환수운동을 시작해야 할 것이 아닌가? 오대산 월정사의 환수운동 성공을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손곡리를지나면서 삼당시인 손곡 이달 선생의 한 어린 생애를 생각하며 '조선조의 제도적 모순 때문에 통한의 생을 산 많은 사람들이 뜻을 펼 수 있었더라면 역사는 어느 방향으로 흘렀을까' 하는 상념에 젖기도 했다.

거돈사지에서 손곡저수지까지 약 4㎞의 고갯길은 주위에 나무도 많고 비포장 도로여서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셋째 날은 흥원창제방, 섬강제방길 등 남한강과 섬강을 끼고 걷는 풍미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이다. 언제나 강물은 유유히 여유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여름 장마 후라 흥원창 합수머리에 가득한 강물은 장관이었으며 섬강 물도 가득 차서 도도하게 흐르는 것이 힘이 넘쳐 보였다. 건등산을 돌 때는 손곡 이달 선생의 시 「건등산」을 문화해설사가 전 대원에게 낭송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삼국통일의 기개 넘치는 시를 참여 학생들이 암송하도록 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넷째 날은 지정중학교에서 약수터를 거쳐 월송2리 삼거리까지의 오솔길, 신평초교에서 윗골 저수지까지 임도는 처음 걸어보는 길로 나무도 많고 경관도 좋아 걷기에 아주 좋은 코스였다. 소초삼거리에서 학곡교까지는 42번 국도를 차량 통행이 많아 소초의 산 자락을 따라 구룡사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빨리 개발하였으면 좋겠다.

다섯째 날은 이번 200㎞ 걷기 대행진의 하이라이트이며 백미인 치악산을 종주하는 날이다. 치악산은 우리 원주시민의 어머니로 언제나 우리를 반겨주며 거부하는 적이 없이 포근하게 안아준다. 또 치악산은 원주시민의 방패로 모든 천재지변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아침 6시30분에 구룡사를 출발해 세렴폭포를 향하니 세렴폭포에서 쏟아지는 뿜어내는 냉기로 별로 더운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사다리병창에 이르니 경사가 급해 많은 대원이 힘들어 했다. 앉아서 쉬는 대원도 많았다. 사실 땀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들더라도 구룡사에서 비로봉까지 쉬지 않고 오르는 것이 더욱 보람있고 희열을 느낄 수 있으니 참고 올라가 기록을 세우자"고 권유하니 상당수의 대원들이 동조해 서로 격려하고 합심하며 약 20여명이 함께 비로봉 정상에 올랐다. 많은 대원들이 쉬지 않고 곧바로 비로봉 정상에 오른 것은 처음이라고 하면서 고마움을 표하며 기뻐했다. 나도 덩달아 더 기뻤다.

향로봉에 오르는 것도 만만치 않았는데 남대봉을 거쳐 영원사 계곡으로 내려왔다. 영원사 계곡은 바위와 돌로 되어 있는데다 장마 이후라 미끄러워서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결국은 한 번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으나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 무사히 종주를 마치고 야영장에 도착해 운영진이 준비한 냉막걸리를 들이키니 꿀맛이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 길이 없다. 이렇게 해서 20㎞ 치악산 종주를 작년에 이어 또 해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고 해 냈다는 희열만 가득찬다.

야영장이라 텐트에는 전기가설도 되어있지 않아 일찍 취침하려고 했으나 억수같은 비와 함께 천둥까지 동반해 잠이 오지 않았다.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여섯째 날은 치악산휴양림으로 해서 금창리 임도를 걷다가 금창리 계곡에서 계곡수에 발을 담그고 쉬었다.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물이 수정같이 맑아 옛말대로 가히 갓끈을 씻을 만하여 발을 오래 담그고 있기가 자연에 민망할 정도였다. 학생들은 다이빙도 하면서 한 때를 즐겼다. 좀 어둡고 산만한데다 음향시스템이 제대로 안 돼 문제가 있었지만 그동안 걸으면서 즐거웠던 일, 힘들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면서 술잔을 기울이니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마지막 날은 충열사, 원천석묘역을 지나 번재삼거리를 거쳐 국민체육센터에 와서 해단식을 하였다. 모두가 헤어지기 아쉬워 사진도 찍고 악수를 반복하고 머뭇거리며 내년에 만날 것을 기약하였다. 작년에는 국도 중심의 걷기였는데 올해는 새로운 비포장 임도를 많이 개척하여 걷기에 아주 좋았다.

또 문화해설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설명도 괜찮았다. 이런 대행진을 주최한 원주시, 원주시생활체육협의회, 원주투데이, 그리고 주관하고 발전시켜준 원주시걷기연합회에 감사 드린다. 앞으로 새로운 길을 더 많이 개척하고 문화해설도 더 체계화하며 대원들에게 발표 기회도 주고 서로 친교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대행진이 명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인류의 스승들은 한결같이 도(道)를 추구하였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하였고 맹자는 "정의란 사람의 바른 길"이라고 하였다. 도(道)란 우리말로 길이다. 예수는 추구하는 경지를 넘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렇다. 길은 진리이고 생명인 것이다. 걷는 것은 바로 길을 가는 것이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야 하고 길 중에는 곧은 길도 있고 굽은 길도 있으며 오르막 길도 있고 내리막 길도 있다. 지도자는 길을 밝히고 만들고 안내하며 옳은 길을 잘 가는 사람을 말한다.　

이번 대행진에 참여한 모든 대원이 주어진 위치에서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 길을 밝히고 걸으며 인생길에 성공하는 사람이 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