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정일권이 세운 민긍호 의병장 충혼탑을 철거해야 된다는 글에 대한 반론이 있었다. "민긍호 의병장 충혼탑은 독립운동가 출신 권준 장군이 주도해서 세운 것,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일권은 시멘트를 지원해준 것이고, 충혼탑을 세울 당시 그가 친일파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충혼탑 건립을 주도한 분이 독립운동가 출신 권준 장군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친일파 정일권이란 측면만 부각해서 철거를 주장하는 것은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비문 내용이라도 꼼꼼히 읽어보았으면 하는 의견도 덧붙였다.

반론을 읽으며 반가움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민긍호 의병장 충혼탑에 친일파 이름이 새겨진 사실을 논쟁을 통해 좀 더 많은 원주 시민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는 반가움, 원주시 문화재 담당자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안목에 대한 아쉬움 그것이다.

해방 후 친일파들은 자신의 과거 행적을 숨기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그 중 하나가 민족운동가의 추모탑, 동상, 영정 등에 이름을 남기는 방법이다. 효창공원 백범 김구 동상에 새겨진 박정희 이름, 정읍 황토현 전적지 전봉준 동상에 새겨진 김경승(친일 조각가)이름, 동학 2대 교주 최시형 묘소 추모비에 새겨진 이선근(친일 사학자) 이름, 유관순의 영정을 그린 장우성(친일 화가) 등등 찾아보면 사례는 많다. 원주시 봉산동에 있는 민긍호 의병장 충혼탑에 새겨진 정일권의 추모글을 살펴보자.
　
원주 진위대의 특무정교로서 팽창을 거듭하던 일본 제국주의가 군을 강제로 해체코자 간계를 시도함에 애국부하들을 영도하여… (중략) …반세기를 격한 오늘날에 있어서 혈전 분투하는 우리의 참다운 귀감으로서 영원히 대한 청년의 흉금에 계승되어 그 빛을 더하리라.(육군참모총장 정일권)
　
'군대를 해산시키려는 일제의 간계'라는 대목이 가시처럼 걸린다. 정일권이 장교로 근무했던 만주군, 간도헌병대는 이 일대에서 활동하던 항일투사들에게 총구를 겨누었던 일본군 부대였다. 이런 전력이 있는 정일권이 민긍호 의병장 충혼탑에 일제 간계 운운하는 글을 새겨 넣을 자격이 있을까. 육군참모총장으로 시멘트를 지원해준 예우 정도로 이름을 새긴 것이니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면 그만일까.

'반세기를 격한 오늘날에 있어서 혈전 분투하는 우리의 참다운 귀감'이란 표현은 어떨까. 육군참모총장으로 전선에 앞장선 자신의 모습을 민긍호 의병장의 모습과 동일시하려는 의도가 엿보이지 않는가. 그 결과 만주군, 간도헌병대 장교로서 독립운동가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과거는 사라지고 민긍호 의병장을 귀감으로 삼아 현역 군인으로서 혈전 분투하고 있는 의로운 군인상만 부각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일제에 맞서 싸우다 순국한 민긍호 의병장의 명예, 충혼탑 건립을 주도했던 독립운동가 권준 장군의 명예, 현재를 살아가는 원주 시민들의 명예를 위해서 친일파 정일권의 이름이 새겨진 충혼탑은 철거해야 마땅하다. 철거 후 권준 장군의 고귀한 뜻을 본받아 원주 시민들의 의지를 모아 작고 아담한 기념탑을 세울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