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님~ 이리 불러보는 것도 처음입니다. 서방님은 아시나요? 하늘 아래 모진 삶을 살아내면서 제 마음에 담은 유일한 남자는 당신입니다.

가난한 한 촌의 여식으로 태어나 겨우 목숨만 붙어 살아가던 제가 처녀가 되어 팔리듯 혼인을 한 임이아버지와 관계는 호구지책의 한 방편이었을 뿐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았을 뿐입니다.

그래도 하늘이 내려 준 삶인지라 생을 살아내려는 욕심으로 아이도 낳고 남들보다 더 부지런을 떨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허황된 욕심으로 임이아버지가 비명에 가고 동네 사람들의 괄시와 냉대가 힘겨워 도망쳤다가 다시 평사리로 돌아왔을 때 오며가며 부딪는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당신의 눈빛만은 부드럽고 따뜻했습니다. 사람의 정이 담겨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여자가 되었습니다. 목숨을 부지하려 먹을 것을 훔치고 치마를 걷어 올리던 추악한 미물처럼 살던, 이름도 없이 그저 임이네로만 살아가던 제가 여자가 된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저의 마음에 담긴 그리움 때문이었으리라… 아마도 제 안에 있던 사람다운 사람에 대한 욕심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허나 그것은 저만의 정이었고 저만의 그리움이었고 저만의 꿈이었기에 당신은 늘 너무나 먼 곳에 있었습니다. 이역 멀리 용정에 와서도 단 한 치도 곁을 주지 않으시니 저는 부황난 거지꼴로 당신 주변을 서성이는 점점 더 못난 아낙이 되어갔습니다.

그렇게 생긴 마음의 부황은 날마다 눈덩이처럼 커져만 가서 감당할 수 없으니 그 허기를 돈으로 채우는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돈을 탐하는 아귀 같다고 쑥덕거리고 대놓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욕을 해댔습니다.

아마 저처럼 욕을 많이 먹은 여자가 또 있을까요? 아니 저를 여자로 봐주는 사람이 있을까요? 전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짐승이었지요….

저는 하늘이 내려준 인연으로 홍이가 태어났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여자로 살아지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여러 개의 바퀴살이 모여서 하나의 수레바퀴를 이루지만 수레를 구르게 하는 것은 정작 가운데의 빈 곳이며,흙을 빚어 그릇을 굽지만 그릇의 이용 가치는 그릇의 빈 공간이듯이 당신을 그렇게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간절한 저의 바람은 당신이라는 벽 앞에서 낱낱이 무너져 내리고 영혼의 부스러기조차 흔적이 없으니 돈이라는 허망한 꿈이라도 잡아보고자 갈망하게 된 것입니다.

하늘이 나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나는 스스로 노력하여 행운을 맞이할 것이고 세상이 나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니 나는 돈으로 권력을 사리라. 고통은 가슴 속 깊이 묻고 슬픔은 영혼 속 깊이 감추리라….

당신이 제게 한조각의 마음이라도 담아 주셨더라면 저도 기꺼이 월선이가 되었을 것입니다…그저 따뜻한 눈으로 흘끗 바라만 보아주셨더라도 저는 홍이와 함께 당신의 아내로 살았을 것입니다…

저의 상한 영혼을 위해 손을 잡아주셨더라면 저는 밑동이 잘려도 새순이 돋는 나무처럼 살았을 것입니다. 새벽의 투명한 이슬을 이파리마다 달고 동구 밖 바람 언덕에 서서 날마다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은행나무가 되었을 것입니다…

서방님! 이제 저는 떠납니다. 살면서 갖은 패악을 떨었던 저를 당신의 기억에서 지워주세요. 당신의 사랑이고자 했으나 이름도 없이 살다간 여자는 그렇게 잊혀지는 것이 운명이니까요…

저의 하나뿐인 서방님, 당신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