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형 원장

이영형(76) 예심문화연구원 원장은 30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무려 500여회가 넘는 주례를 섰다.

기록을 남기려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그의 컴퓨터에는 그동안 자신이 주례를 선 370여 쌍의 신랑·신부의 결혼식 자료가 정리돼 있다.

30대 중반 먼 친척의 부탁으로 처음 주례석에 선 이후, 회사 동료와 지인들의 주례요청이 줄을 이었다.

전문 주례가 아닌데도 입소문이 돌면서 예식장이나 호텔 등에서 전속 제의를 해왔고 심지어는 하객으로 남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이 원장의 주례사를 듣곤 일면식이 없는 사람이 즉석에서 주례를 요청하기도 했다. 다닌던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주례를 보기 시작했다. 많을 때는 하루에 5번까지 주례를 선 일도 있다. 

가능한 3분 내외로 간결하면서도 적절하게 유머를 섞어 지루하지 않은 그의 주례사는 독특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신랑·신부에게 서로 윙크를 하라고 한다거나 감흥을 주기위해 황금찬 시인의 '꽃의 말' 등 그때 그때 어울리는 시를 낭송하기도 한다. 이 원장의 특별한 주례사에는 이유가 있다.

이 원장은 '주례사(主禮辭)'를 '선물사(膳物辭)'라고 부른다. "주례는 단순히 예식을 주관하는 사람이 아닌 신랑·신부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행복 가꾸기 씨앗을 선물로 드리는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서로 칭찬하고 효도하고 인내하라는 내용이 담긴 그의 주례사는 늘 건강하라는 덕담으로 끝을 맺는다. 단순히 신체적 건강만이 아니다. 정신적·신체적·경제적으로 모두 건강해야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자신이 직접 정리한 5계명이 적힌 '부부지정다짐'을 나눠주고 당부의 말도 잊지 않는다. "가정에 문제가 생겼을 때 꼭 내게 연락하라는 다짐을 받아요. 전화 한 통화 값만 들이면 밥 값 차 값은 모두 내가 계산합니다." 실제 결혼 후 위기를 겪은 몇몇 부부는 이 원장의 상담을 받고 부부사이가 원만해졌다. 이 원장만의 확실한 애프터 서비스인 셈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주례로는 신랑이 나타나지 않아 2시간이나 지연됐던 결혼식을 떠올린다. 결혼식 전날 술을 잔뜩 마신 신랑이 12시 예식인데 오후2시가 넘을 때까지 나타나질 않자 식장이 발칵 뒤집혔다. 양가 혼주들을 대신해 주례인 이 원장이 하객들에게 사과를 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뒤에서야 거나하게 취한 신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랑이 취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이 원장에게 '왜 화를 안내세요?'라고 묻자 신부를 가리키며 "이제라도 왔으니 됐다"고 했단다. 그 때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신부가 그제서야 눈물을 떨궜고 신랑이 "가지않고 기다려줘서 고맙다"며 두 손을 꼭 잡았다. 이후 예정보다 늦게 결혼식을 올린 부부는 지금도 다복하게 잘 살고 있단다.

결혼식 주례를 서 준 부부가 후에 자녀의 이름까지 지어달라고 부탁해 올 때가 가장 고민스럽다는 그는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한 계속 주례를 설 계획이다. 이 원장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며 "남을 위해 무엇이든 해 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자부심도 생긴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