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미술 시민작가회 결성…다수계층 참여한 시민문화 견인

"외국문화 들여와 고급문화로 칭송하면서 고유 문화와 단절… 잘못 인식된 편견 바로잡는 일에 매진할 것" 

상지영서대 김진열(60) 교수는 교수집단이 갖고 있는 보수성과는 달리 원주환경운동연합과 생명미술 시민작가회 창립멤버, 원주민예총 지부장 등 주로 진보적인 단체에서 이름을 날려왔다.

연구실에서 자신의 작품이나 책과 씨름하는 대신 사회문제를 향해 붓을 들어든 돈키호테 같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지역 대학은 지역사회 문화발전에 일정한 봉사나 공로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제가 갖고 있는 생각입니다.그래서 지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하지만 대부분의 제 작품이 제도권 안쪽의 작품 이미지가 아니라 미술을 통해서 제도권 바깥쪽의 사회문제와 개인의 삶을 반영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홍익대학교 응용미술학과 70학번으로 입학했지만 넉넉하게 대학을 다닐 형편이 안되었고, 휴학과 군 입대, 제적 등의 과정을 거쳐 졸업은 9년만인 1979년 했다.

"형제가 8남매다 보니 맏이도 아닌 제가 무엇을 하든 부모님은 큰 기대를 하지 않으셨죠. 그렇다 보니 예술을 하겠다는 저의 생각에 크게 반대를 하지 않으셨어요. 전공은 디자인 쪽이었지만 순수미술을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서양화를 공부하게 되었죠."

1979년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직장을 잡은 곳은 조선일보 편집부였다. 안정적인 직장을 잡은 것도 잠시, 10.26사태를 거쳐 신군부 정권에서 편집국 내 저항운동을 벌였던 친구와 선배 4명이 해직되는 아픔을 곁에서 지켜보며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당시 많은 기자들이 해직의 아픔을 겪었지만 편집국에 남은 사람들에게는 월급을 2~3배 가량 올려주는 등 처우가 많이 개선되자 모두들 그 문제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죠."

김 교수는 사표를 던지고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 봤다고 한다. 70~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주변사람들이 고통을 겪을 때 자신의 역할이 한 없이 작게 느껴지는 것을 뼈져리게 겪고 나서 그들의 아픔을 대변해 주고 싶었다.

"제가 사회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습니다. 해직된 선후배들의 아픔에 대한 책임감을 사회활동에 쏟아 붓자라고 다짐한 끝에 여러 사회활동에 발을 들여놨습니다."

1986년 상지대 교수 임용을 통해 상지영서대에 부임했고 1993년에는 환경운동연합 창립멤버로, 1996년에는 생명미술 시민 작가회를 결성하면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퍼주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고(故) 장일순 선생이 원주 지역에 다져놓은 생명사상을 주목했다. 그리고 생명사상을 환경운동과 결합해 생명미술 분야를 탄생시켰다. "처음에는 환경련 회원들을 대상으로 미술교육을 시작했죠. 매년 전시회를 열고 활동을 하는데 전문가들 작품보다 주제가 다양하고 생활면에서 있어서 밀접함과 진정성이 더 녹아 있는 경우가 많아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주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한가지가 대학이 문화판을 장악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문화는 다양성을 보존해야 하는데 대학이 일방적으로 문화를 제공하고 통제하게 되면 어느 도시나 획일적인 문화만이 존재하게 되죠." 교수들이 갖고 있는 문화인 철학의 가치는 어느 대학이든 비슷하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영향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일반적인 시민들이 이끌어 가는 문화계 발전은 더디게 진행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엘리트 집단에 의해 이끌어져 가는 것보다 다수의 계층이 참여해 문화 여론을 이끌어가는 것이 진정한 문화라는 생각이죠."

김 교수는 미술이라는 학문을 그저 감상하고 즐기는 것에서 벗어나 인문학과 연계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가 인문학자와 예술이 결합된 도시였기 때문에 르네상스 운동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원주의 문화 발전을 예술쪽으로만 치우치지 말고 인문학적인 안목을 가지고 창작활동을 한다면 원주 문화가 중흥을 이룰 것으로 믿고 있다.

앞으로 김 교수는 지역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지역문화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지역 설화를 바탕으로 한 공모전을 통해 한국 고유의 전통 문화를 전파할 생각이다.

"현대사의 불행 가운데 한가지가 대한민국 고유 문화와의 단절입니다. 전문가 집단이라 불리던 일제시대 예술가들이 외국문화를 그대로 들여와 고급문화로 칭송하면서 우리 고유의 문화를 외면했어요. 그러다 보니 생소하고 낯선 우리 문화는 당연히 촌스럽고 질 낮은 것으로 인식돼 폄하되고 있어요. 과거 잘못 인식된 편견을 바로잡는데 온 힘을 쏟을 것입니다."

 원주의 대표적 문화인사로, 그리고 사회 활동가로 맹활약하고 있는 김 교수가 미술을 공부해야 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계기는 유년시절 읽은 '플란다스 개' 동화를 보고 나서였다.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꿈을 키워나가는 소년 네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고 동경해 왔다고 한다.

"벨기에를 배경으로 한 동화는 저에게 미술이라는 다른 세계를 알려주었습니다. 앞으로도 네로처럼 순수한 정신을 가진 예술가로 평생 살고 싶다는 것이 저의 자그마한 꿈입니다."

가족은 원주에서 미술치료를 가르치는 이정숙(56) 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첫째 아들은 조경디자이너로, 둘째아들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혜원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