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치악예술관이 개관되던 해, 내게는 원주에서 최초로 시도된 합동공연의 연출을 맡는 기회가 생겼다. 개관 무대에는 최현묵의 <상화와 상화>를 올렸는데 극단「산야」,「치악무대」,「노뜰」등 연극협회 소속 세 개 극단이 모두 참여했었다. 그런데 안타깝지만 다행스런 일은 당시 암투병 중이시던 장상순 선생이 지팡이를 짚고 부축을 받으며 작품을 관람하시고 원주 연극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셨던 것이다.

며칠 전 시청공원 야외무대 철거를 바라보며 지난 22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갔다.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1981년부터 몸담고 있던 극단 산야는 경북 포항에서 개최된 제7회 전국연극제(1989년)에 김상열의 <애니깽>으로 참가했었는데, 고 장상순 선생, 극단 「산야」의 김학철 대표와 함께 그때부터 뜻을 세운지 22년 만에 마침내 원주에서 전국연극제가 개최됐던 것이다.

우리는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국연극제 개최계획을 제출하고 도내 다른 지역과 경쟁하면서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삼수 끝에 2009년 11월 마침내 원주가 2011년도 개최지로 확정되기에 이르렀다. 이토록 힘겹게 유치를 해서였는지 몰라도 연극제 사상 유료관객 최다, 자발적 참여 관객 최다 등과 함께 무려 3만8천명이라는 관람객을 기록해 개막 축하공연 등 열렬한 찬사를 받은 다양한 부대행사와 함께 역대 최고의 연극제라는 평가를 받으며 막을 내렸다.

'시청공원'은 19일 동안의 전국연극제로 인해 비로소 예술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시민의 공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업그레이드 되었으며, 연극제 조직위원회에서 마련한 문화나눔 버스를 타고 공연장을 찾으신 어르신들은 새로 지은 시청사를 바라보며 원주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뿌듯하게 느끼셨다. 여기에다 평소 공연예술을 접하지 못 했던 장애인과 영월, 횡성 등 인근 지역 학생들은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만끽하느라 기념사진을 찍는 등 공연이 끝난 뒤에도 감동의 열기를 식히며 여운을 이어가고 있었다.

인동소극장 등 다섯 곳의 소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객석이 모자라 미처 입장하지 못 하자 앵콜 공연을 요구하기도 해서 연극제 사무국 직원들이 괜시리 송구스럽고 난감해지는 일들이 다반사로 이어졌으니 1996년, 내가 극단 치악무대의 대표를 맡고 인동소극장의 문을 열며 내건 슬로건 '좋은 연극, 아름다운 세상'이 마침내 우리 원주에서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연극제 개막 이후 언론을 비롯해 여기 저기서 원주 전국연극제의 성과에 대해 칭찬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연극에 대한 시민들의 엄청난 관심과 열기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반영하고 표출해 낼까 하는 고민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고민은 원창묵 시장의 폐막 환송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앞으로 펼쳐질 연극축제는 연극협회만의 독자적인 차원을 벗어나 별도의 법인체를 갖추는 등 범시민적 관심과 열기를 담아내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같은 이름의 시집에 수록된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서른을 바라보는 전국연극제를 치르고 나서 지금부터 또 가슴이 뛰고 있다. 좋은 연극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환하게 불 밝히고 다시 무대를 꾸밀 부푼 기대가 가슴을 채우며 커져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