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여성문학인회 회원들과 함께 원주 지역 선대여성 임윤지당의 발자취를 찾아 나섰다. 임윤지당은 원주에 시집 와서 평생을 살면서 남성 중심의 유교문화가 성행했던 조선시대에 학문과 수행에 온 힘을 쏟았다. 우리 역사가 낳은 가장 위대한 여성 학자이며 도덕 실천가이다.

먼저 봉산동에 있는 시비를 둘러보았다. 2008년 11월 13일 봉산동 새마을공원에 임윤지당에 대한 소개와 뒷면에 비검명(비수에 새기는 글)을 실어 시비를 세웠다. 그런데 말이 공원이지 시비 옆에는 정화조가 묻혀 있고 수시로 지나가는 기차소리에 시비에 대한 설명도 제대로 들을 수 없고 도로 옆이라 차량 소음으로 임윤지당의 숨결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과연 시비가 이 곳에 있는 것이 옳은지, 왜 이유도 없는 이 곳에 시비를 세웠는지 답답했다. 안 하느니보다는 나은 일이지만 하려면 제대로 해야하지 않겠는가.

강원도에는 춘천의 윤희순 의병, 강릉의 신사임당, 허난설헌, 원주의 임윤지당이 각 지역을 대표하는 역사적 여성이다. 신사임당은 오죽헌을, 허난설헌은 생가 복원을 통해 그 지역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윤희순은 한국최초의 여성 의병으로 추모제, 학술회의, 강연회, 백일장, 사진전, 미술전 등으로 선양 사업을 하고 있다.

특히 윤희순상도 제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원주에서는 음력으로 5월 14일이 임윤지당의 생신이어서 강원감영에서 헌다례와 백일장을 3년째 열고 있다. 허난설헌을 기리는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솔밭과 기념관 ,생가가 어우러져 마치 허난설헌을 만나는 듯 했다. 원주에도 하루 빨리 임윤지당 생가가 건립돼 강원감영에서 헌다례와 백일장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음으로 임윤지당이 시집 와서 살았다는 우물시장 옆 당간지주를 찾았다. 새 주소를 알리는 표지판에는 임윤지당 길이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하지만 그 옆 흉가 때문에 임윤지당 길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원주는 갈 곳이 없다. 볼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있는데 발굴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임윤지당이 살았다고 추정되는 당간지주 앞 폐가를 매입해 사당을 건립하고 임윤지당 오빠인 임성주가 보낸 편지 중 봉천과 구석일대를 되살려 가장 위대한 여성 학자를 기리는 것이야말로 원주에 사는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호저면 무장리에 있는 임윤지당 묘를 참배했다. 찾아 가는 길 안내판도 하나 없고 묘에는 비석도 없었다. 다행이 파평 임씨 자손인 임교순 선생님의 안내가 있었기에 찾을 수 있었다. 타 지자체에서는 없는 것을 만들어서도 하고 있는데 원주는 어떤가.

역사에 비취보면 뛰어나 재능과 업적을 남긴 여성들이 많다. 신라 26대 선덕여왕과 27대 진덕여왕, 51대 진성여왕, 고종의 왕비였던 명성왕후, 사업가로 객주 만덕, 기생으로서는 황진이, 매창, 논개가 유명하고 예능인으로는 신사임당, 허난설헌 등이 있지만 학자로는 임윤지당 한 분 밖에 없다.

최초의 학자인 임윤지당에 대한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선양이 이루어지도록 원주시와 시민들이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다. 사당도 건립하고 시비도 옮기고 묘소에 이정표도 세워 전국에서 원주를 찾는 이들에게 최초의 여성 학자를 돌아보는 관광코스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오늘은 임윤지당 묘소에 무성히 난 풀들을 뽑다 베인 손가락이 아픈 것이 아니라 임윤지당 행적을 원주의 문화적 가치로 승화 시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가슴 아픈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