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가지 꽃으로 풍요롭던 봄의 성찬은 가고, 어느새 아카시아 꽃 향기 가득한 초여름 문턱에 서 있다. 일상에 몸을 맡기다 보면 가족과 함께 편안한 자리조차 마련하기 쉽지 않다. 어찌 보면 아침에 잠깐 얼굴을 대한 후, 세상이 만들어 놓은 일정한 '그물망'에서 보내다 석양에 걸친 노을을 뒤로 한 채 피곤하고 지친 육신을 던지는 밤을 맞이한다.

이렇게 우리네 삶의 여정은 단편적이고 반복적이며 버겁다. 어른들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무엇이 그렇게 바쁘고 무엇이 그렇게도 힘들게 하는지 모른다. 어딘가 모르게 다들 피곤해 보이고 무엇인가 재촉을 받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가장 편안해야 할 가정에서 조차도 대화가 단절된 채 적막하기만 하다. 이렇게 건조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바보상자'로 단정했던 TV앞에 함께 모여 울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엄마 그리고 청·장년을 비롯한 소년과 소녀까지도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최근 방영되었던 '남자의 자격'과 현재 진행 중인 '나는 가수다'인 프로그램이다.

지난 여름 안방을 감동의 열기로 달구었던 '남자의 자격 합창단'의 하모니 '넬라판타지아'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연예인이지만 평범한 남자들과 다를 바 없는 7명의 남자들이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합창에 도전한 것이다. 혼자만의 능력으로 이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 32명의 개개인이 화음을 넣어 하모니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 합창단 멤버는 사무직원, 가수, 개그맨, 파이터 등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었고, 화음도 모르고 악보도 보지 못하는 오합지졸의 합창단이었으나, 서로 위해주고 당겨주고 밀어주면서 그들의 색이 뚜렷한 훌륭한 합창곡을 탄생시켰다. 노래가 끝난 후 32명의 합창단원이 흘리는 눈물 앞에 우리 모두가 울었다. 어쩌면 환희와 감동 그리고 저마다 이루지 못한 어릴적 꿈에 대한 열망이 섞인 후회 없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 우리는 또 다시 한 가수(임재범)가 부르는 단 3분의 노래 한곡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의 노래가 대중가요시장의 최고 기록을 갱신하면서 대중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지니고 있는 특유의 가창력과 심장 깊숙이 파고드는 창법 그리고 절규에 가까운 카리스마도 이유가 되겠지만, 노래다운 노래를 듣고자 했던 목마름을 해소해 주는 예술가적 진정성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그의 삶의 구석에 짙게 드리워진 그늘과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에 공감하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이었으리라.

우리 모두가 8분의 합창과 단 3분의 노래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은 우리시대의 힘들고 각박한 현실을 어루만져주고 위로해 주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대중들은 이렇게 노래 한곡에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감동하고 울고 웃는 연약한 사람들이다.

눈만 뜨면 대중과 국민 그리고 민족을 위해서라는 미사어구를 사용하는 이 땅의 권력자와 가진자들이여, 그리고 거침없이 토해내어야 직성이 풀리는 언어로 무장된 마술사들이여, 이제 당신들이 연약한 대중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그들이 원하는 말에 진정 귀 기울여야 할 때이다. 힘든 삶의 여정을 꿋꿋하게 걸어가고 있는 이 땅의 가지지 못한 자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춤추게 할 행복의 노래를 들려주어야만 하지 않겠는가.

다시금 눈을 지그시 감고 모든 이의 영혼을 춤추게 하는 두 노래의 가사를 음미해 보자.
　
…내 환상 에서 나는 정의로운 세상을 봅니다. 모두가 평화롭고 정직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나는 언제나 자유로운 영혼을 꿈 꿉니다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 줄게.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때~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