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한 냄비가 상에서 끓는다. 센 불로 한 번 확 끓인 뒤 신선한 미나리 한 대접과 다진 마늘을 넣고 한 번 더 팔팔 끓인다. 국물을 한 술 뜨면 얼큰한 장맛에 미꾸라지의 고소함, 그리고 금방 넣은 미나리의 시원함이 감돈다. '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이 집 추어탕을 먹어보면 말끔히 해소된다.

그 뿐이랴, 부추와 파가 들어가 개운하고, 계절에 따라 표고, 새송이 등 버섯도 송송 썰어 넣는다. 감자까지 가세해 든든함을 더한다. 총각무와 고추장아찌도 맛있고, 살얼음이 뜬 동치미는 달지 않고 시원하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옆으로 방 몇 개가 연결돼 있다. 십여 년 전 뒷집을 얻어 가게를 튼 때문이란다. 중간에 훤히 드러난 주방은 오후 두시가 넘었는데도 분주하다.

원주에서는 추어탕 원조로 오래 전부터 소문난 집이다. 2005년 원주시 향토전통음식점으로도 선정된 이 집은 단순히 추어탕 집이어서가 아니라 흉내 낼 수 없는 '장맛'이 진짜 비결이다. 해마다 열 가마 정도의 콩으로 메주를 띄우고 장을 만든다. 콩 값이 저렴할 때는 더 많이 띄워 두는데, 칠, 팔년 전에는 한 번에 마흔일곱 가마를 띄웠단다.

이복순(72) 대표는 "장맛에 가장 신경을 쓴다"며 "절에 다니는 사람이 백일기도 하는 공을 들인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공들여 만든 장은 행구동 작은아들네의 수십 개 항아리에 보관한다. 추어탕을 보면 된장 색이 나는데 사실은 고추장 양념이다. 일반 고추장 보다 메주가 많이 들어간 이 대표 특제 고추장이라 붉은 색이 덜하다.

스무살에 포항서 원주로 시집와 스물넷에 추어탕 장사를 시작한 이 대표는 이제 일흔이 넘은 할머니 사장이다. 미꾸라지가 비타민이 풍부해 피부에 좋아선지 얼굴빛이 곱다. 장사를 해 온 얘기를 듣자니 꼭 옛날 얘기 같다.

개업할 당시에는 추어탕 파는 곳이 거의 없었고 가정에서 미꾸라지를 잡아다 끓여먹었다. 이 대표도 십몇 년을 남편이 잡아 온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만들어 팔았다. 후로는 미꾸라지가 줄고, 양식업이 일반화 돼 지금은 충남 당진군 합덕과 전북 남원의 양식장에서 공급을 받고 있다.

가게자리도 처음 십년은 길 건너 마을에서 이집 저집 옮겨 다니다 지금 가게로 정착한지 40여년. 단골손님을 묻자 30년 넘게 오는 손님들 얘기를 하더니 "내가 이십대 때 왔던 손님 중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며 덧붙인다.

늦은 점심을 드시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 손님에게 추어탕 맛을 물었더니 "삼십년 가까이 오는데 한결같이 맛있다"며, 대화를 들었는지 "사장님이 벌써 칠십을 넘기셨냐"고 놀란다. 이렇게 오랜 세월 전통을 지켜 온 장사 이야기를 얼큰하고 구수한 추어탕 맛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표는 "돈 욕심 부리기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장사를 이어왔다"며 "장사라는 게 내 나름의 신념을 갖고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메뉴는 추어탕(8천원)과 숙회(2만5천원), 미꾸라지 튀김(1만원/반접시 5천원)이 있다. 바로 튀겨 낸 미꾸라지 튀김을 추어탕과 함께 먹어도 좋다. 위치는 개운동 원주고 맞은편. ▷문의: 763-7987

한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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