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나 일본 여행을 하다 보면 한 가지 메뉴로 50년, 100년을 이어가는 식당이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래된 맛 집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행구동 치악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석경묵집(대표: 임성자)은 문을 연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식당 분위기나 메뉴, 조리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원주를 대표하는 맛 집으로 꼽힌다.

9년 전인 2002년 본지 '맛따라 멋따라'에 소개한 바 있는데 당시나 지금이나 맛이나 분위기에서 차이가 없다. 석경묵집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오랜 단골들이고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터넷에서도 손님들이 올린 글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석경묵집이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대표적인 메뉴는 메밀묵, 도토리묵밥, 해물파전. 여기에 동동주를 곁들인다. 텃밭에서 가꾼 채소, 직접 담근 장을 사용하면서 조미료를 넣지 않고 조리하는데다 황토집 허름한 방이 도시생활에 찌든 사람들 입맛을 돋운다. 온갖 해물과 버섯을 듬뿍 넣어 두툼한 해물파전 또한 숲속에서 신선놀음 하는 기분을 가져다주며 식욕을 자극한다.

치악산 자락, 울창한 숲, 황토집, 산골에서 맛볼 수 있는 메뉴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때문에 잠시나마 머리를 식히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인 집이다. 석경묵집이 이러한 매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임 대표의 안목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울에서 생활하던 임 대표는 여행 중 우연히 석경마을에 들렀다가 한 눈에 반해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 45년된 황토집을 구입하고 주변에 꽃과 나무를 심어 가꾸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울창한 숲을 이루고 벚나무, 목련, 연산홍, 꽃잔디 등이 계절마다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하고 있다.

"자연과 함께 소박한 삶을 사는 것이 큰 행복"이라는 임 대표는 텃밭과 꽃을 가꾸고 항아리를 관리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매일 아침 2시간 동안 그날 손님들에게 내놓을 묵을 만든다. 추석과 설 연휴를 제외하면 매일같이 하는 일이라고 한다.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는 것도 임 대표의 이러한 노력 때문인 듯 하다.

총각 때부터 오던 손님인데 지금은 중학생 아들과 함께 오는 것을 보면 흐뭇하다는 임 대표는 "손님이 많은 것도 좋겠지만 한 번 오신 손님이 언제 다시 와도 고향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도 맛과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며 고향집 할머니처럼 늙고 싶다고 말했다.

취재를 위해 들른 시각은 오전11시. 이른 점심시간인데도 손님들이 적지 않았다. 6년 전부터 단골이라는 서혜숙(39, 단구동) 씨는 "계절마다 운치가 달라 자주 찾게 된다"며 "사정이 있어 자주 오지 못할 때는 해물파전 생각이 떠나지 않을 정도"라고 석경묵집 예찬론을 폈다. 12시로 접어들자 손님들로 북적였고 여기저기서 해물파전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인터뷰를 계속할 수 없어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규모 큰 식당이 부럽지 않아요. 지금처럼 한결같고 소박한 모습으로 손님들 곁에 남아있고 싶어요"

메밀·도토리묵밥(5천원), 도토리묵무침(1만원), 해물파전(1만원), 더덕구이(8천원), 황태구이(8천원), 동동주(7천원). 행구동 황골방향. 오전10시부터 밤9시까지 영업한다. ▷문의: 747-6283(석경묵집).

최윤경 기자
cyk@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