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된 행정' 펼쳐야 해결 가능

현수막실명제 도입, 광고주와 제작업체 모두에게 과태료 부과해야 근절

지난주 본지가 특별기획으로 다룬 불법현수막 실태를 보도하자 많은 시민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건물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불법인 줄 처음 알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홍보를 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욕구인데 대체할 홍보수단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현수막을 걸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고질적인 도시문제가 되어 버린 불법현수막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까. 취재를 통해 얻은 결론은 현실에 맞는 조례개정, 시민 공감대 형성, 일관되고 지속적인 단속과 제재 등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에 맞는 조례 개정

무엇보다 현실에 맞게 법과 조례를 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 옥외광고물등 관리법에 따르면 '벽면에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는 건물은 유통산업발전법에 의해 대규모 점포, 상공업지역으로 규정된 곳에 연면적 3천제곱미터 이상 건물'로 명시돼 있다. 이 조건에 해당되는 건물은 원주에서 시외버스터미널과 이마트 단 두 곳 뿐이다. 게다가 대부분 사업주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 보니 법은 있으나마나 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용정순 시의회 행정복지위원장은 "법이 지나치게 엄격해 위법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시민들에게 대안을 마련해주지 않고 불법현수막을 걸도록 하는 것은 시가 위법을 조장하는 것 밖에 안된다"며 조례를 현실에 맞게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공목적 현수막 양성화

관공서에서 시급하게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도로변에 설치한 현수막까지 불법이라는 것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상위법을 개정해 공공목적으로 게시하는 현수막은 예외로 규정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공공목적의 범위를 정하기가 어려워 예외규정을 두지 않은 만큼 다른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춘천시는 2008년부터 1~2단으로 된 '공공현수막 지정게시대' 19개를 운영하고 있다.(사진 참조) 도로와 인도 사이 경계석에 설치해 운전자들이 쉽게 볼 수 있다. 춘천시 관계자는 "일반 지정게시대는 예약이 많아 시급성을 가진 공공목적 현수막을 거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설치 후에는 보기에도 깔끔하고 도로변 불법현수막도 3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아산시는 공공목적의 현수막은 지정게시대가 아니더라도 일정기간 가로수나 전주 등을 이용해서 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읍·면·동별 1개로 개수를 제한하고 신고한 날짜에 철거해야 한다.

▲ 사진은 춘천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도로와 인도 사이 경계석에 설치한 지정게시대.

단속인원 확대 시급

불법현수막을 단속하고 철거하는 담당공무원이 2명인 것도 문제다. 원주시 담당공무원에 따르면 하루에 철거하는 불법현수막은 40~50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불법현수막은 이보다 훨씬 많다보니 제 때에 철거하기는 어렵다. 골목길에 걸려있는 불법현수막이 1개월이 지나도 그대로 걸려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법현수막을 거는 사업자들은 2~3일만 철거되지 않아도 효과는 본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수원시는 각 구마다 공무원 4~5명, 민간위탁업체 4~5명을 배치해 단속인원만 40여명에 달한다. 원주시 관계자에 따르면 원주시도 지난해 공공근로자 5명을 관련부서에 배치해 운영했지만 현수막 업무는 맡지 않았다. 게다가 올해는 공공근로자를 전혀 배정받지 못했다. 현수막 업체 관계자들은 도로변에 설치한 불법현수막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걸기가 무섭게 철거해 효과를 보지 못하게 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모 현수막 제작업체 관계자는 "공무원 2명이 원주 전역에 걸려 있는 불법현수막을 단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임시직이라도 많은 인원을 투입해 매일 전지역을 돌며 철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인원 확보가 어렵다면 업체위탁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수막 색깔까지 지정(수원시는 현수막 글자 색상·이미지까지 제한)

원주시 조례에 따르면 현수막 바탕색은 적색류 또는 흑색류 색깔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업체는 찾아보기 어렵고, 단속도 하지 않고 있다.

수원시는 지난해부터 현수막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명확하고 상세하게 규정했다. 바탕색은 흰색 또는 아이보리색만 사용할 수 있고 글자색상도 지정된 5가지색 내에서만 허용된다. 글자크기 및 이미지 규격까지 제한해 이를 어길 경우 현수막을 제작한 광고업체에 과태료를 부과한다. 수원시 관계자는 "현수막 색상과 이미지까지 제한하고 난 후 도시 전체가 깨끗해진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현수막실명제 도입 과태료 부과

아산시는 지난 2월부터 현수막실명제를 시범운영 중이며 5월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이다. 현수막실명제는 현수막 우측하단에 사업주와 광고업체 이름, 전화번호를 기재하고 설치기간을  명시하도록 한 것. 실명제를 따르지 않으면 지정게시대에 설치할 수 없다. 또한 지정장소가 아닌 곳에 설치하거나 실명제를 위반한 현수막은 광고를 의뢰한 사업주와 광고업체 모두에게 과태료를 부과한다. 아산시 관계자는 "두 달간 실명제를 실시한 결과 40%정도 불법현수막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현수막업체 관계자나 시민들도 실명제 도입과 광고업체에까지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불법현수막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모 현수막 제작업체 관계자는 "현수막을 의뢰한 사업주가 불법장소에 현수막을 걸어달라고 요구하면 거절하기 힘들다"며 "만일 현수막 제작업체에도 과태료를 부과하게 되면 거절할 명분이 있기 때문에 상당부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말하는 불법현수막 개선방안

본지는 불법현수막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시민, 시민단체 관계자, 시의원, 상인, 현수막 업체 직원 등 20여명과 인터뷰 했다. 이중 대표적인 의견을 정리했다.

김모 씨(무실동): 현수막이 생활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어 필요하지만 무분별하게 걸려 있는 현수막을 보면 보기에 좋지 않다. 지속적인 홍보를 통해 불법현수막 없는 도시에 대한 시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모 씨(우산동): 시청에서 거는 현수막은 그대로 두면서 일반 시민들에게 준법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원주시부터 앞장서서 법을 준수해야 한다.
　
제현수 원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 단속강화만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합법적인 현수막 게시 공간을 확보한 후 강력하게 단속해야 한다. 또한 무용지물인 게시대는 철거하고 수요가 많은 지역에 게시대를 늘려야 한다. 도로 팬스를 이용해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거나 공공기관 게시대도 시민들에게 개방해야 한다. 원천적 문제를 정비해 단속하지 않아도 현수막 문화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승현 녹색연합 사무국장: 공공기관의 선행적 모습이 필요하다. 기관과 기업이 앞장서 불법현수막을 걸지 않는다는 다짐과 실천을 보여주면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광고에 대한 욕구까지 억누를 수는 없으니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한 광고를 활성화하면 좋겠다. 시청이나 지역신문 홈페이지에 저렴한 가격에 광고를 등록할 수 있도록 공간을 개설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잘 구축하면 공공기관 뿐 아니라 일반 사업자들도 간편하게 광고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모 씨(상인): 영세한 상인들이 손쉽게 광고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현수막 뿐이다. 지정게시대를 이용하려면 1~2개월씩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불법 현수막을 걸게 된다. 지정게시대를 대폭 늘려야 한다.
　
김모 씨(음식점 사장): 장사하는 사람들도 시민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자기 가게만 돋보이기 위해 요란하게 현수막을 거는 것은 같은 장사하는 입장에서도 보기가 좋지 않다.
　
A 현수막업체 관계자: 원주도 LED게시대를 설치해야 한다. 지정게시대를 늘리는 것이 가장 좋지만 예산 문제가 있다면 광고업체에서 설치하고 기부 위탁하는 방법도 있다.
　
김학수 원주시의회 건설도시위원장: 지정게시대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운전자에게 방해를 주지 않으려면 쉽지 않다. 거주지역에 있는 지정게시대를 이용할 때 우선권을 주면 게시대 이용이 원활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벽면 현수막도 철저히 단속하고 현수막 뿐 아니라 옥외광고물 전반에 대해 동일하게 단속해야 공평하다. 

최윤경·한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