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투데이는 그동안 불법현수막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에 불법현수막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대안은 없는지를 모색해 보기 위해 2주일 동안 집중 취재했다. 취재를 통해 우리는 원주시 전역에 걸려있는 현수막 중 99%가 불법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취재결과를 불법현수막 실태와 과제, 바람직한 개선방안으로 나누어 2주에 걸쳐 보도한다.

현수막 99% 불법…법 따로 현실 따로

▲ 31개 원주시 지정게시대에 걸린 것은 합법.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수막.

이 현수막 대부분이 불법으로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들이 얼마나 될까. 관련법에 따르면 원주시가 지정한 현수막 게시대에 걸려 있는 현수막을 제외하면 99%가 불법현수막이다.

거리 곳곳에 걸려있는 현수막은 극히 일부만 적법한 것이고, 건물에 부착돼 있는 현수막은 몽땅 불법이다.

▲ 읍면동 주민센터에 설치된 게시대도 합법.

현재 원주시 전역에는 어림잡아 1만개가 넘는 현수막이 걸려 있을 텐데 거의 대부분이 불법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어떻게 도시 전체에 걸려 있는 현수막 대부분이 불법일 수 있을까.
　
현실과 동떨어진 법률

이 같은 현상은 우선 법이 현실과 유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수막 설치에 관한 규정은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과 원주시 옥외광고물 등 관리조례에 명시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건물벽면에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는 건물은 유통산업발전법에 의해 대규모 점포 등록을 한 건물, 상공업지역으로 규정된 곳에 연면적 3천제곱미터 이상 건물'이 규정에 따라 신고하고 설치하도록 되어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원주에서 현수막 설치가 가능한 건물은 시외버스터미널과 이마트뿐이다. 이 두 곳을 제외한 모든 건물에 걸려 있는 현수막은 불법이다. 상업용 건물에는 예외 없이 2, 3개 현수막이 걸려 있고 7, 8개씩 걸려 있는 건물도 있다. 상인들은 지난 수십년간 이런 방식으로 홍보를 해왔고 시민들도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이 사실상 불법인 것이다.

원주시는 2009년 이같은 내용으로 조례를 개정해 운영해 오고 있지만 시민들 대부분은 이를 알지 못하고 있다. 조례만 제정했지 이를 적극 홍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법현수막 철거를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도 "단속을 하다보면 불법인 줄 모르고 있는 시민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보니 관련 건물에 부착된 불법현수막은 심하게 미관을 훼손하지 않으면 단속을 하지 않고 있다. 법과 조례가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 공공목적을 위한 것이지만 불법.

도로변은 극히 일부만 인정

도로상이나 담장 등에 걸려 있는 현수막도 대부분 불법이다. 관련법에 따르면 선거와 관련한 현수막이나 관혼상제, 학교행사, 종교의식, 시설물 보호·관리를 위한 광고물, 적법한 정치활동 또는 노동운동을 위한 행사·집회에 사용되는 광고물만이 적용배제 대상이며 30일 이내 기간만 게시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용배제를 인정하는 경우가 극히 일부에 불과한데다 모호한 부분이 있

▲ 공공시설관리를 위한 것은 예외. 이 현수막은 불법.

어 관공서조차 불법현수막을 거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읍면동 주민센터 울타리에 걸려 있는 현수막은 공익적 내용이라 하더라도 불법이다. 무실동 시청 앞 도로 주변에 신호체계 변경을 알리는 현수막이 여러 개 걸려있는 데 이 역시 불법이다.

주정차 금지구역임을 알리는 현수막도 마찬가지다. 학교마다 정문에 걸어 놓은 현수막도 졸업식 등 행사를 알리는 것은 허용되지만 학생들이 각종 대회에서 수상한 내용을 축하하는 현수막은 불법이다.

관공서에서 공공목적으로 다수에게 알려야할 내용은 예외로 한다는 규정이 없다보니 단속주체인 원주시도 불법현수막을 걸고 있는 어이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관련 공무원도 "시청 내 각 부서에 불법현수막을 걸지 말도록 요청하고 있지만 협조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서 "그렇다고 관공서에서 부착한 현수막까지 철거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민들도 불법현수막 단속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도로변에 현수막을 걸었다고 철거됐다는 김 모씨(44·단구동)는 "불법인줄 알고는 있지만 원주시는 불법현수막을 걸면서 시민들은 걸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표출했다.
　
지정게시대 74곳…주유소 게시대 '불법'

일반적으로 적법하게 현수막을 걸 수 있는 곳은 원주시 지정 게시대 31곳과 동주민센터 내에 설치된 게시대 25곳, 읍면에 설치한 게시대 18곳뿐이다.

일반 건물도 게시대를 설치할 수 있지만 단일형 지주(지주대를 하나 세우고 현수막 1개를 게시)에 한정돼 있는데다 원주시에 신고해 허가를 받아야 가능한데 현재 원주시에서 허가한 단일형 지주 게시대는 단 한 곳도 없다.

주유소와 교회, 일부 건물들이 자체적으로 게시대를 설치해 현수막을 걸고 있는데 이 역시 불법이다.

원주시 관계자는 "일반 건물이 단일형 지주대를 설치해 현수막을 설치할 수는 있지만 대지 내에 일정면적 이상 공지가 있어야 하고 통행에 불편을 주지 않아야 가능한데 동지역에는 이 조건에 부합하는 건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단속인원 부족 일관된 단속 한계

현재 불법현수막 단속 업무는 원주시 도시디자인과 광고물정비계 직원 5명이 담당하고 있다. 이중 2명이 매일 불법현수막 철거 및 계도업무를 하고 있지만 이들이 현수막뿐 아니라 간판, 벽보 등 모든 광고물에 대한 단속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는 불법현수막을 단속하고 철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불법현수막 철거를 담당하고 있는 원주시 공무원에 따르면 2명이 전 지역을 매일 단속하기 어렵기 때문에 문막읍 같은 외곽지역은 1~2주일에 한번 정도 단속을 하고 있다. 거리에 현수막을 걸면 철거되는 줄 알면서도 계속해서 걸고 있는 것도 바로 철거되지 않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원주시가 수거한 불법현수막은 2만2천620개. 과태료 부과 건수와 금액은 101건 2천800여 만원이다. 광고물정비계가 별도로 분리되고 인원이 보강되면서 주요 도로변 불법현수막은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주요 도로를 벗어나면 오랫동안 철거되지 않은 채 걸려 있는 불법현수막이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지난 29일 본지 취재팀이 4시간에 걸쳐 동지역을 돌아본 결과 주요 도로변은 외곽지역에서 20여개 정도만 확인됐다. 하지만 이면도로나 주택가 도로는 모든 도로를 확인하지 않았는데도 200개가 넘었고 부착한지 수개월 이상 됐을 것으로 보이는 현수막도 적지 않았다.

단속인원 부족으로 미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도로변에 불법현수막을 걸은 한 사업주도 "현수막 게시대는 원하는 시기에 걸 수 없고 효과도 적어 불법인줄 알면서도 도로변에 걸었다"며 "운이 좋으면 1주일 정도는 철거되지 않기 때문에 지정게시대 1주일 거는 것보다 홍보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건물 현수막 철거, 반발 때문에 어려움

건물에 부착된 현수막은 심한 경우가 아니면 단속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워낙 대상이 많은데다 철거하려고 해도 업주들이 반발하거나 협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주시 광고물정비계 관계자는 "건물이나 가게 앞에 붙은 현수막을 철거하려고 하면 반발하거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 등 철거를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며 "도로변은 발견즉시 철거하지만 건물은 철거하기 어려워 경고 장을 보내 자진철거를 유도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시민들이 불법행위에 대한 공권력 행사를 항의하거나 저지하는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일관적인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모르고 있었던 데다 자신만 피해를 당한다고 생각해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것.

불법현수막을 건 한 사업주(단계동)는 건물에 부착한 현수막이 불법인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알고 있다면서도 "원주투데이가 불법현수막 관련 기사를 내보내면 누가 손해를 보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신문에 기사가 게재되면 원주시가 일시적으로 단속을 강화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어려울 것"이라며 "결국은 장사하는 사람들만 피해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현수막,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워

불법현수막 문제는 원주만의 문제는 아니다. 특히 지방도시 사정은 비슷하다. 이유는 법이 시민정서나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허용범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해 놓은데다 단속이 어렵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길거리에서 시민 10명에게 상가 건물에 부착되어 있는 현수막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물어보자 10명 모두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단계동에서 만난 한 주부(40·우산동)는 "상가에서 상품정보나 세일 등을 안내하는 현수막은 생활하는데 도움이 된다"며 불법현수막 단속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을 완화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미국에서 10년 동안 거주하다 귀국한 모 교수는 "미국에서는 현수막을 찾아보기 어렵고 간판도 색상이나 규격이 통일돼 있어 도시 전체가 정돈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간판이나 현수막이 무분별하게 붙어 있어 혼란스럽다" 고 말했다.

사업차 해외를 자주 나가고 있는 유광수 21세기정책연구소장도 "유럽은 물론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일본 등 아시아권 국가에서도 우리나라처럼 현수막을 거는 나라는 없다"며 "우리도 현수막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세계적인 추세나 도시미관 차원에서 보면 현수막 문화는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뿌리 깊이 박혀있는 현수막 문화를 개선할 수 있느냐는 것. 이에 대해 한 시민단체 실무자는 "게시대를 늘리고 단속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면서 강력하게 단속하되 적극적인 홍보로 시민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주시 한 공무원도 "담당부서 직원만으로 불법현수막 문제를 해결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며 "공익근무자 등을 투입해 단속을 강화하고 현수막 실명제를 도입해 현수막 제작업체까지 과태료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미희·최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