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향영육아원의 따뜻한 방에서 이글을 읽고 있을 사랑하는 단원들을 생각하며 기쁨으로 안부 전합니다.
3주 전만 해도 근린공원에서 영원사까지 26km를 걷는데 8시간이 넘게 걸리는 여러분과 강릉-원주 간 160km를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예비 6학년부터 중·고생 18명으로 '심향 청소년 순례단(심청단)'이라 이름 짓고 강원의 동서를 두 발로 잇기로 한 그 순간은 엄숙한 결단의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2월 21일 월요일 아침. 출발지 강릉 경포. 뺨을 세차게 때리는 늦겨울 바람과 눈 폭탄을 맞은 자리라고 알려주듯 발목까지 빠지는 눈이 덮인 '백사장'이지만 여러분의 용기를 꺾지 못했고. 봄을 기다리는 동해의 녹색 섞인 푸른 파도, 흰 눈에 반사된 햇빛조차도 대원들의 결연한 눈빛보다 더 강렬할 수는 없었습니다.
가파른 대관령을 오르는 여러분의 어깨위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김, 기특한 여러분을 구름 한 점 없이 내려보던 하늘, 멀리 보이던 여러분의 발자국 찍힌 강릉시내, 그리고 대관령 정상에서 김밥과 사발면으로 즐긴 노천 점심식사.
대한민국 스키 발상지인 횡계에서 눈 축제 때부터 서있던 덩치 큰 눈사람들의 환영, 진부 5일장 장터마당, 이효석 선생의 생가와 문학관에서의 즐거운 한 때. 태기산을 넘을 때는 두 팔 벌려 환영하던 풍력발전 바람개비, 그간 깊은 겨울잠을 자다가 힘찬 여러분들의 발걸음 소리에 버들가지 눈을 뜨며 기지개를 켜는 흥정계곡의 얼음들. 마지막 날, 그 간의 인내를 마지막으로 시험하듯 내리던 찬비.
하지만 추호도 흔들림 없이 7시간 반을 빗속에서 의연하게 대열을 유지해 걸어준 여러분은 제게 큰 감동으로 기억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결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늘이 여러분의 용기와 노력을 칭찬하기 위한 멋진 퍼포먼스이며 이 행사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많은 분들의 고마운 희생이 있었음을 잊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느닷없는 질문에 "내게 가장 소중한 건 이 아이들이죠!"라고 서슴없이 고백하는 이한성 국장님, 이번에 이런 멋진 계획을 준비하시고 유별나게 여러분을 아껴주시는 진성용 선생님, 끝까지 같이한 고동현·김미화 선생님, 휴가 중에도 여러분이 걱정되어 수시로 찾아와주신 여러 선생님들, 80넘은 노구로 저녁도 굶으시며 찾아주신 원장아버지…. 이제 여러분은 더 이상 외로운 아이가 아닙니다. 원대한 포부와 자신감 넘치는 자랑스러운 단원입니다.
마음의 고향 '심향원(心鄕院)'에서 사랑 듬뿍 받으며 자라면서 이번 국토순례의 힘든 여정을 잘 이겨낸 여러분이 앞으로 시대의 선구자가 꼭 될 것을 믿습니다. 훗날 훌륭한 지도자가 된 여러분을 존경의 눈으로 보는 이들에게 잊지 말고 말씀해주십시오. "나는 자랑스러운 심청단 1기였고 세상을 헤쳐 나갈 진정한 걸음을 그때 배웠노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