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사람들이 거주지역을 생각할 때 교육, 의료같은 인프라 보다는 사람과 환경을 많이 본다고 한다. 사회 안전망을 통해서 의료혜택에서 벗어난 곳이 많지 않고 대안적 교육활동에 관심이 많아져 대도시가 아니더라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변에 걷기 좋은 길이 있는지, 이웃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같은 정서적 만족감을 더 찾는다고 한다(제주 올래길이 생기고 길을 찾는 관광객들도 많이 늘었지만 그 길 근처로 이주해온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쇠락해가는 슬럼지역에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점포들이 하나, 둘 문을 닫는 재래시장에 예술가들이 터를 잡고 앉아 공연도 하고, 이웃들과 함께 찍은 사진전을 연다. 경상도의 어느 작은 섬에서는 모든 주민이 시인이 되어 시집을 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많은 사람들이 유럽여행을 다녀오면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보고서는 "역시 멋진 도시야"라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일본 교토에서 공연준비차 약 2개월 동안 머무르는 동안 우리가 사용하던 연습 공간은 교토시내 번화가 한 가운데 있는 옛 초등학교 건물로 지금은 '교토아트센터'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그곳에는 10여개가 넘는 공연 연습장과 미술가들을 위한 10여개의 작업실, 갤러리, 2개의 공연장, 아카이브, 카페가 한데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었다. 모든 공간들은 예술가들로 가득차 있고 쉬는 시간 틈틈이 서로 구경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동네 주민들이나 근처 기업의 직장인들은 문턱 없이 공간에 들어와 쉬거나 구경하기를 즐기는 여가 공간 같은 곳이기도 했다.

내 이웃 아저씨가 '원빈'은 아니더라도 예술가라면 조금은 향기가 날 것이다. 이웃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형형색색의 빛깔들을 캔버스에 입히려 싸우고 있는 모습을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자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웃의 언니, 오빠들이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연습하고 창너머로 아이들이 햄릿의 대사를 듣고 따라 할 수 있다면 아이들은 아이돌가수에 관한 수다꺼리 말고도 또 하나의 이야기 꺼리가 생기니 이것도 얼마나 좋을까?

시장님이 도시를 디자인 하신다고 하는데 시각적인 디자인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사람디자인도 같이 하면 좋겠다. 이름하여 '우리 옆집 미스터&미쎄스 예술가 프로젝트'. 도심 곳곳에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을 만들어 창작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그곳에 들어와 작업 할 수 있게 한다. 창작의 과정을 공개할 수 있고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예술가여야 한다.

미술관이나 공연장도 필요없다. 작업실 내에서도 좋고 이웃집 마당이나 옥상을 활용한 전시, 공연공간이면 더 좋다. 예술공간의 문턱을 낮추면 내 이웃집이 미술관이 되기도, 공연장이 되기도 한다. 주거환경이 좋아지니 집값도 오를 것이다. 이렇게 조성된 창작공간들이 떼지어 일을 도모하면 동네방네 축제가 될 것이다.

프랑스에 샤롱 페스티벌은 작은 도시 곳곳, 골목 귀퉁이 마다 예술가들이 자리잡고 앉아 공연한다. 서울시에서는 권역별로 유휴공간을 찾아내서 창작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공연장이나 미술관을 짓는 것 보다 훨씬 적은 예산으로 효과를 보고 있다. 인천시는 차이나 타운 입구의 오래된 건물들에 아트 플랫폼을 만들어 예술가들을 입주시켰다. 공간은 인도와 직접 면해있어 고개만 조금 돌리면 지나가는 행인들이 창작작업을 구경할 수 있다. 때로는 공연이나 미술품 보다 예술가들의 창작과정, 리허설 과정 자체가 더 큰 감동을 주는 예술콘텐츠의 원형이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