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로 인해 사람들은 사후평가를 두려워하게 되어 옷깃을 여미게 된다.'는 말이 있다.

2천 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의 붓끝에서 쓰인 '열전'에서 모든 인물과 역사가 여지없이 정죄(定罪)되고 있으니 역사의 기록이라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것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운곡 원천석이 여말선초 역성혁명기에 작성한 '비밀기록'에 대해서는 운곡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의 논문에서 "증손자대에 불태웠다고 전해진다"고 한다. 운곡이 임종을 앞두고 자손들에게 '이 책을 가묘(家廟)에 감춰 두고 잘 지키도록 하라'고 유언을 했고, 또 그 책 표지에 쓰기를 '내 자손 중에 나와 같은 자가 나오기 전에는 이 책을 펼쳐 볼 수가 없다.'라고 했지만 세월이 흘러 증손의 시대에 와 열어보고, 당시 알고 있는 역사와 다른 기록을 확인하고는 가문의 화를 면키 위하여 '불살라 버렸다'고 한다. 증손자대라면 시기를 늦춰 잡아도 1500년을 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성판윤과 호조판서를 역임한 김시양[金時讓 1581(선조 14)∼1643(인조 21)]이 쓴 자해필담(紫海筆談)[사진]에 보면 "今年十二。隨父兄避壬辰兵于雉岳山之大乘庵。元斯文警鳴亦在焉。卽公之後也。時出其藁。余嘗少?窺一班。而不能細也。(금년 12월에 나는 부형을 따라 임진의 병화를 피하여 치악산(雉岳山) 대승암(大乘庵)으로 갔는데, 사문(斯文) 원경명(元警鳴)도 거기에 와서 있었으니, 바로 원공의 후손이었다. 때로 그 유고(遺稿)를 내놓아서, 나도 일찍이 그 일단을 대략 엿볼 수 있었는데, 상세히 보지는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비밀기록(유고)'을 불태웠다던 시기보다 100여 년 뒤에 후손에 의해 타인에게 보인 것이다. 어쩌면 '불태웠다'고 전해진다가 사실이 아니라면 지금 620여 년 전의 이 '비밀기록(유고)'이 존재해 운곡 원천석 선생이 책에 기록한 것처럼 지금 '나와 같은 자'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동진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