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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마을 김정규 원장
가출청소년이 나눔 실천가로 변신
2010년 10월 25일 (월) 이혜원 객원기자 wonjutoday@hanmail.net
   
 

"소외받는 사람 없는 세상 꿈꾸며…" 복지시설 운영

5년간의 이전 준비 끝에 지정면 판대리에서 안창리로 이전한 포도마을. 포도마을의 중심에는 처음부터 김정규(56) 원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포도마을이 탄생해 자리잡기까지 그간의 과정은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순탄하면서도 또 굴곡을 맞기도 했다.

김정규 원장은 어머니를 일찍 떠나보낸 충격으로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자 채 20살도 되기전 가출한 경험을 갖고 있다. 가족과의 연락도 끊고 우연한 기회에 독학으로 공부하며 특유의 성실함을 바탕삼아 섬유회사에 취직해 착실한 직장인으로 살았다.

타지에서 생활하며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생활했던 그는 교회 지인을 통해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됐다. 탄탄한 직장을 가진 그에게 경찰공무원인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윤택했다. 하지만 30대의 젊은 가장은 복지시설을 운영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처음 복지시설을 운영하겠다고 했을 때 아내의 반응은 싸늘한 편이었습니다. 세상 어떤 아내라도 남편이 헐벗을 각오를 해야하는 길을 가겠다고 할 때 선뜻 찬성 하기란 쉽지않죠. 하지만 21일간의 금식기도를 통해 제 소신을 보여주자 말없이 믿고 따라주었습니다."

주위의 소외받는 사람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다소 순진한(?) 포부를 가지고 밑바닥 부터 일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결혼 2년만에 그리고 쌍둥이 형제와 막내딸 등 3남매를 둔 시점이었다. 인천의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총무로 일하며 차근차근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쌓아나갔고 2년뒤 원주로 내려왔다.

부산이 고향인 김정규 원장이 원주에 뿌리를 내린 이유는 바로 이창복 전 국회의원과의 인연 때문이다. 둘의 인연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창복 전 의원이 이끌던 청소년 자활대에 봉사활동을 하며 친분을 쌓았고 그 친분은 포도마을이 지정면에 들어서는 밑거름이 되었다. 처음 포도마을 건물이 들어선 부지도 이창복 전 의원에게 무상임대 받은 토지였다.

"포도마을 건물을 지을수 있도록 아내가 선뜻 건내준 2천만원은 오늘날 포도마을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후원하는 친구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덕분에 꿈을 이루게 되었죠."

93년 포도마을 문을 열고 13명의 부랑인 식구들이 모였다. 그들을 위해 최우선으로 해줄 수 있는 건 우선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병아리와 사슴을 키우고 같이 농사를 짓고 모든 할 수 있는 것은 자급자족으로 채워나갔다. 포도마을에서는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입소문이 노숙자들 사이에 퍼지면서 겨울에는 청량리 노숙자들이 원정을 오는 바람에 원생이 40명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시설을 운영하면서 가장 안타깝고 미안한 대상은 가족이었다. 3명의 아이들은 포도마을 건물에서 원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녔다. 아내도 직장생활 때문에 타지에서 생활하다 보니 제대로 신경을 써주지 못하자 중국 상해에서 학교를 운영하던 친구에게 부탁해 삼남매는 본의 아니게 유학길에 오르게 됐다. "쌍둥이 아들은 현재 한국에 들어와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막내딸은 상해에 남아 작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죠. 제가 도움을 많이 못줬지만 반듯하게 자라준 3남매는 저에게 큰 자랑입니다."

김정규 원장은 얼마전 개명을 했다. '김정구'에서 '김정규'로 바꾼 것인데, 비슷하게 이름을 바꾸게 된 사연도 흥미롭다. 10대 시절 가출하면서 '김정구'로 주변에 자신을 소개했고 군대 문제로 호적을 다시 만들게 되면서 '김정구'로 바꿨다. "지금이야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전산시스템이 발달되지 못했던 당시에는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원래 이름을 찾은 계기는 2006년 포도마을이 도내에서 처음으로 조건부사회복지시설에서 법인으로 등록을 마치고 나서다. 법인이 되고 나서 채용된 직원이 불만을 품고 도청에 김 원장의 비리를 폭로했던 것인데 그당시 억울함에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조사끝에 결백이 밝혀졌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컸습니다. 그 억울함을 가까운 지인에게 이야기 하다 형제들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제는 만나봐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듣고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연락을 하게 되었죠. 제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형제들은 저를 만나고 나서 이름을 원래대로 바꿀것을 권유했고 그래서 개명 아닌 개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7년간 김정규 원장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회상했다. 여름철에는 고무신, 겨울에는 털신이 닳아 터질 정도로 들로 산으로 관공서로 뛰어다니며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했다. "이제는 복지정책도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는 원초적인 지원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욕구를 채워주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또 발벗고 나서야겠죠."

그의 마침표 없는 인생이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펼쳐질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그에게서 행복한 복지정책의 미래를 함께 그려본다. 가족은 남양주 경찰서 교통계장으로 근무하는 표영선(49) 씨와 2남1녀.   이혜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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