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지원은 느티나무를 심고 오랜 시간 기다려야 시원함을 맛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친지들이나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생각지 않던 전화를 가끔 받는다. 치악산 등반길에 설치된 시화들을 보았다면서 전해주는 그들의 격려와 찬사의 말들이 싫지만은 않다. 굳이 전화가 아니더라도 전시된 시화를 촬영해간 등반객들이 여기저기 인터넷 사이트에 옮겨 담아가며, 치악산 등반길의 인상을 전해주는 기록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원주문인협회가 구룡사 앞 등반로에 시화를 내건 지 벌써 여덟 해째가 되었다. 이제 '치악산생명문학축제'라는 이름으로 매년 9월부터 두 달간 이어지는 이 행사는 비단 원주의 행사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알려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때를 기다리는 한 행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 지역의 모습은 그 지역이 갖고 있는 문화의 양태로 표현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문화라면, 우리 지역의 얼굴은 좀 더 문학을 비롯한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모습이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예술인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이나 이들을 지원해야 할 계층의 인식이 제고되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세상을 살다보면 늘 뒷전으로 처지는 쪽은 가족이나 친지들이고, 이 세상에서 한 번 정도 만나고 말 사람들이 더없이 소중히 대접받을 때가 많다. 이제는 뒷전에 물러나 있는 내 가족-지역 예술인들에게도 시선을 돌릴 때가 된 것 같다.

여러 층위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생각은, 요즘 사람들이 너무 감각적인 것만 추구하고, 보이는 현상에만 집착하면서, 문화·예술까지 투자의 개념으로만 인식하고 이해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어놓고도, 그 그늘의 시원함을 맛보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의식과 정서를 변양하고 형성하는 일이 어찌 단시간에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세대를 넘어서도 만져보지 못할 과실을 지금 당장 눈앞에 보여 달라는 성급함이, 모든 예술의 혼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측면을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열악한 지역문화의 육성을 위해서는 행정당국과 시민들의 아낌없는 지원이 절실하다. 그런데 그 어느 쪽도 당장의 성과를 떠나 오랜 기다림을 용인할 만한 인내심이 없음이 현실이다. 더구나 문화·예술의 미래를 담지하고 있는 주체들이 사람들이므로, 그 개개인이 속하고 있는 테두리나 태도에 따라 '너는 되고, 너는 안 된다'는 편가르기를 비롯한 '범주의 폭력'이 횡행하고 있음도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한 지역의 문화가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하여서는 지역민 전체의 통합과 이해가 필요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연전에 어느 시장과의 대화에서, "나는 원주시민들이 나중에 '문화시장'으로 기억해주길 바란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어디 시장 한 사람뿐이겠는가. '건강한 도시', '살기 좋은 도시' 다 좋다. 그러나 그 위에 '문화의 도시' '문화시민'의 원주라는 자랑스러운 수식어가 더해질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욕심낼 일일까? 치악산에 시화를 내걸면서, 원주 시민들 모두와 함께 좀 더 세련되고 좀 더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행사, 온 나라와 국경을 넘어서까지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원주의 자랑인 축제를 꿈꾸면서, 부실한 여건의 현실을 되돌아보며 어쩔 수 없는 자괴감을 달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