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무실로 1번지에서 들려오는 새로운 시작의 소리가 건등산 넘어까지 부산하게 들려오는 듯 하다. 전쟁에 패한 장수는 병법을 논할 자격이 없다라는 절제의 시간이지만 전쟁에 패한 병사는 용서가 돼도, 경계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되지 못한다라는 명분아닌 명분으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어 본다.

나는 이번 6.2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어느 정당 출신이 당선되었냐 라는 의미보다는 지방자치 부활 20년만에 비로서 우리 원주도 진정한 자치정치의 틀을 완성해 갈 최소한의 조건을 시민들이 어렵게 만들어 줬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왜냐하면 최소한 관료조직의 옷을 입지 않았던 다소 차별화된 원주시 수장의 이력 때문일 것이다. 30개월 의정생활 내내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던 점은 원주시 수장부터 읍면동의 조직까지, 심지어 의회 내에서 조차도 관료적인 위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인지하기 까지는 의원 뱃지를 달고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진정한 자치정치란 상향식(Bottom-Up) 의사결정 방식이 아닌가? 오늘은 시민의 역량과 의식수준(Governance, 協治) 그리고 제도상의 미비점을 논하는 것은 별도로 하자. 그래서 우리는 지금 관료라 부르지 아니하고, 공무원 또는 공복이라 하지 않는가? 이러한 사실 확인은 의회 밖에서 생각했던 지방자치의 본질과 나의 정체성에 대한 위기감으로 다가왔고, 비록 30개월짜리 의원으로서 다소 어설프긴 했지만 절대 다수의 여당 의회속에서 소수 야당의원 역할을 자임한 것은 초심에 충실하고자 한 나 자신과의 약속이자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절대적 소임이었다.

한국인에게 '라인강의 기적'을 벤치마킹하게 만든 독일(구 서독)의 콘라트 아데나워(Konrad Adenauer) 총리는 "정치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용기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신임 원주시 수장의 최근 행보에서, 나는 일단 소신과 용기라는 덕목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시장을 한번만 하겠다는 각오로 일하시겠다고 공언하면서 배수진을 친 의연한 모습에 우리 31만 원주시민은 새로운 원주시정의 변화될 모습에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기대감 속에서 묵묵히 지켜볼 것이다. 필히, 그렇게 되고, 되시길 간절히 바란다.

꽤 오래전부터 우리 원주의 역사적 숙원사업들이었지만 해당 지역의 지속가능성 측면과 진정한 원주시 전체 발전 측면에서 주민들의 상식적인 이의제기를 불가항력적인 상황의 잣대로 주민들을 설득하고 강행한 전임 수장과 고위직 관료들의 업적(?)을 단 한마디의 선언으로 변경하신 그 카리스마에 존경과 더불어 혼란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떻게 정리해야 옳을까? 또한 마땅히 재고되어야 하는 사업인데도 아직 침묵하고 계신 것은 없는지? 상황의 변화로 설명하시기엔 이젠 우리 주민들이 그 본질을 이해 못하실 것 같고 그간 심적, 육체적 고통이 너무 컸다. 더구나 우리 주민들이 충혈되어 머리띠 매고 생존을 외칠 때 지금의 소신을 그때도 우리 주민들 앞에 나오셔서 당당히 밝히고 동참하셨다면 지금의 용단에 얼마나 더 많은 신뢰와 박수를 보낼까 생각해 본다.

지역의 언론들도 과거의 계절을 잊으신건지 지금 최소한 침묵하거나 긍정하고 나서는 모습에 주민들은 또 진위를 헤아리기에 앞서 그들의 정체성이 혼란스럽고 머리가 아프다. 더더욱 그 어떤 주인공들도 아직 주민들 앞에 나와서 진실되게 자기반성을 하시는 분이 없는 것 같아 가증스럽기만 하다. 한 지도자의 용기있는 결단이 구현되려면 구성원의 신뢰와 믿음이 선행돼야만 하는 것은 분명하다. 믿음은 선언이 아니라 일관성과 지속성에 진실성이 가미되어야 하는 것 같다. 새 출발선에 선 지금 원주시의 이 혼란과 낭비와 불신의 원인을 나는 관료정치의 산물이라 진단하고 있다. 수장이 바뀌면 언제든지 지역의 진정한 주인인, 주민들의 생각까지도 바꾸길 강요하는 오만한 행태야 말로 이제는 청산해야 할 관료정치라 규정한다.

진정한 자치정치란 시민의 역량과 의식도 중요하지만 그 의사결정을 완성해 가는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의 충실함 속에서 잉태하여 소리 소문없이 시민들 앞에 다가오는 그 무엇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