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춘희(椿姬)로 더 잘 알려진 오페라 '라트라비타(La Traviata)' 공연을 앞두고 매일 서울을 오가며 연습 중인 테너 이찬구(62) 교수.

제자들과 무대에서 함께 공연을 하더라도 전혀 스승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는 젊다. 특별히 외모 관리를 하지 않아도 이 교수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밖으로 표현되기 때문인가보다. 성악가들이 평생 오페라 한 번 해보는 것이 꿈이라고 하는데 이 교수는 이미 60회 이상 오페라 공연을 해오면서 그 만의 즐거운 음악인생을 살고 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해 피아노를 배우고 청소년기엔 클라리넷을 했지만 부모는 아들이 음악인으로 사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서도 레슨을 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음악인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을까. 대성고에서 만난 김철수 선생은 시카고에서 음악공부를 하는 학생이었는데 이 교수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레슨교사를 소개시켜 주면서 그 길을 갈것을 권한다. 그것이 계기가 돼 이 교수는 원주 출신으로는 최초로 서울대학 음악대 성악과에 입학을 하게 된다.

부푼 기대를 안고 대학에 들어갔지만 이 교수는 음악이 싫어진다. 심지어 국악과에서 가야금을 배우기까지 하면서 1학년말 성적이 엉망으로 나왔다. 그 시절 청년회관에서 매주 금요일 음악 감상을 하게 되었는데 14년 이상 한국에서 살고 있던 선교사가 우리 성악을 이상한 발음으로 하는 것을 들으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로 인해 이태리나 프랑스 등 외국어로 부르는 성악이 듣는 이들에게 이상하게 들릴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회의에 빠진다. 더군다나 대학교 2학년 때는 어버지가 돌아가셨고 2년 정도 사업장을 대신 관리하며 그의 음악인생은 삐걱 거렸다.

그러던 중 입대를 해 육군합창단에서 활동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성악가이면서 대중가수인 조영남을 만난다. 합창단원으로 자연스럽게 다시 음악을 접하게 된 그는 조영남으로부터 성악 지도를 받게 되었고, 다시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제대 후 복학한 그는 집중력을 발휘해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오페라 가수의 꿈을 품고 세계 최고 음악원인 이태리 로마의 싼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 입학한다.

그 곳에서 7년 간 공부하며 경험을 쌓은 다음 귀국해 다시 8년간 모든 연주를 중단하고 발성을 익힌다. 각고의 노력 끝에 발성에 대한 실력과 자신감을 얻어 지난 1988년 9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제1회 오페라 페스티벌(정부수립 50주년 기념) 무대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La Boheme)으로 열연한다. 이때부터 라보엠 주역인 '로돌포 역'을 맡아 60회 이상 공연하며 본격적인 연주활동을 펼친다.

현재 태어나고 자란 원주의 강릉원주대학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는 이 교수는 올 2월, 4월, 5월까지 모차르트와 차이코프스키 작품을 공연하는 등 거의 매달 공연을 위해 무대에 선다. 오는 25일 열리는 오페라 라트라비타 공연에서도 알프레도 역을 맡아 가장 주목을 받는 첫 날 무대를 장식한다.

이 교수는 "선생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즐겁게 음악 활동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동기부여된 학생들에게 연습은 즐거운 일"이라고 그의 교육 철학을 말했다. 또 "10%의 음악성만 있으면 교육과 훈련이 포함된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목소리는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

이 교수의 남다른, 아니 올바른(?) 교육관 때문일까. 장남인 이동은(32) 씨도 원주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현재 이태리 피렌체 최고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있다. 차남 이태리(28) 씨는 음악과 미술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그래픽 분야를 배우는 중이다. "자녀 인생 전반적인 부분을 주도하고 책임지려고 하는 것이 부모 역할이 아니다"고 하는 이 교수는 "부모는 자녀의 재능을 발견해서 즐겁게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조력자"라고 말했다.

부모가 앞장서서 틀에 박힌 교육에 강제로 끌어다 넣는 것은 자녀가 갖고 있는 재능을 짓밟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장남 동은 씨가 이태리로 떠나게 된 것도 늦은 시간까지 야간학습을 해야 하는 우리나라 교육제도 아래에선 재능을 제대로  키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급하게 서두르지 말라"고 그는 거듭 강조한다. "충분히 준비가 되었을 때 시작하면 시간은 걸리지만 책임감을 갖고 해 낸다"며 "그래야만 그 모든 것들이 진정 본인 것이 된다"고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음악이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이 교수의 꿈은 실력으로 인정받는 음악인으로 남는 것이다. 

임춘희 기자  hee@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