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엔 농사꾼 낮에는 회장님 밤이면 늦깎이 대학생

"남들은 낮에 일하라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요즘도 새벽3시면 경운기 몰고 논으로…

얼마 전 새벽3시에 집 앞에 있는 논을 경운기로 갈고 아침식사하러 들어오는데 동네사람들이 새벽에 일하지 말고 낮에 일하라고 핀잔을 주더라고요, 근데 그게 제 마음대로 되나요".

오지랖 넓은 농사꾼 신기영(51) 한국농업경영인 원주시연합회장의 말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3시에 일하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원주에 있는 470여명의 농업경영인들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다보니 낮에는 불려다녀야 하는 곳이 참 많다. 회원들의 경조사만 해도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회원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목청을 높여 떠들어야 하는 자리도 부지기수다. 날이 갈수록 피폐해져가는 농촌 살림살이는 그를 더욱 바빠지게 만들고 있다.

약 6만6천㎡에서 벼농사와 밭농사를 짓고 있는 터라 새벽3시에 일어나지 않고서는 농사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게다가 약 2만3천㎡ 규모의 논에서는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손이 더욱 많이 가야만 한다. 무농약인증을 받았으며, 유기농인증으로 상향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고추, 찰옥수수, 고구마, 잡곡 등 손이 많이 가는 밭작물도 재배하고 있다.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 돋보여

신 회장이 이 단체에 몸담은 건 지난 97년으로, 다른 회원들에 비해 몸담은 기간이 짧은 편이다. 95년 치러진 지방선거에 기초의원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 후 조직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입회 동기가 순수한 건 아니었다. 어쨌든 다른 회원들보다 짧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회장으로 선출된 건 거침없는 언변과 말로만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용기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머리카락이 짧은 이유는 지난 2월 말 삭발투쟁을 강행한 때문이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처음 제시됐던 기초의원 선거구는 농촌지역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인구가 적은 읍단위 마을을 동지역과 함께 묶음으로써 상대적으로 농촌에서는 기초의원을 배출하기 어렵다는 농촌의 불만이 제기된 것. 농촌출신 기초의원이 배출되지 않으면 농민들의 민심반영이 어렵다는 점에서 농민들은 다들 공감했으나 막상 선거구를 조정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진 못했다.

신 회장은 부회장 등과 함께 과감히 삭발투쟁을 강행했으며, 이대로 선거구가 확정된다면 투표 불참운동을 전개하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그리고 마침내 선거구가 조정돼 농촌출신의 기초의회 입성이 가능해졌다. 신 회장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원주시의회에서 농촌출신의 입지가 넓어져 다행이다"고 말했다. 작년에는 한미 FTA 타결을 반대하며 삭발투쟁을 벌인 바 있다. 그래서 그의 절친한 친구들은 "이발비가 아까워 1년에 한 번씩 삭발한다"는 농담을 건넨다.

요즘엔 6.2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시장 후보자 초청 토론회를 준비 중이다. 3일에는 농촌지도자 원주시연합회, 원주시 4-H연합회, 원주시 새벽시장농업인연합회, 한국여성농업인 원주시연합회, 원주시생활개선회, 원주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 가톨릭농민회와 토론회 준비를 위한 회의를 진행한다. 관내 모든 농업인단체를 규합한 것은 후보자들의 공약 속에 농업발전 의지를 심어두기 위해서다. 모든 후보자들의 공약에 농업발전을 위한 약속이 담겨 있다면 누가 시장이 되든 농업발전은 담보돼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늦깍이 대학생…주경야독

신 회장은 요즘 주경야독 한다. 새벽에 농사일을 하고, 낮에는 단체 일을 보며, 저녁에는 공부에 빠져있는 것. 한국농업경영인 원주시연합회 김형권 사무국장의 강권으로 올해 상지영서대 행정학과(야간)에 입학해 공부하고 있는 것.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수업을 듣는데 고된 일을 한 날에는 교수님의 강의가 자장가가 된다고 한다. 졸음에 겨워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학생들을 선동해 주점에서 수업을 진행토록 교수님을 설득한다. 얼마 전 중간고사를 치렀는데 하얀 건 종이고, 까만 건 글씨였다는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아내 박종선(49) 여사와의 사이에 3녀1남을 뒀는데 딸 둘이 대학 재학 중이라 신 회장까지 모두 3명이 대학생이다. 부론면 정산1리에서 14대째 살고 있다. 지금은 폐교된 단강초교와 부론중학교를 졸업했으며, 원주농고(현 영서고) 중퇴 후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땄다. 21세기정책연구소 이사와 부론중 운영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이상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