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밥이 보약"이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밥 잘 먹는 것이 건강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밥만 잘 먹어도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는데 굳이 비싼 인삼 녹용 같은 보약은 필요 없다." 라는 정도의 보약 무용론을 줄인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얼핏 듣기에 틀린 말 같지 않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보약에 대한 상당한 오해가 숨어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 조상이 밥과 보약을 구분하지 못하고 수천년 동안 보약을 애용해 온 것도 아니고, 허준 선생이 학문이 부족해서 수많은 보약 처방들을 동의보감이라는 걸출한 의서에 기록으로 남긴 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휘발유를 사용해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어떤 자동차도 휘발유가 없이 달릴 수 없을 것입니다. 밥도 자동차의 휘발유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사람도 밥을 먹지 않고는 생명활동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동차에게 휘발유가 중요하듯이 사람에게 밥은 중요하고 이러한 차원에서 밥이 보약이라는 말은 그리 잘못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엔진 성능이 낮아지면 휘발유를 아무리 넣어도 자동차가 제대로 달리지 못합니다.

이처럼 사람도 위장 기능이 약해서 아무리 진수성찬을 준비해도 먹고 싶지 않고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면 이것을 한의학에서는 비위기(脾胃氣)가 부족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밥이 보약이라고 억지로 밥만 먹는다면 오히려 탈이 날 것입니다. 아무리 조촐한 음식이라도 맛있게 먹고 효율적으로 소화, 흡수 시켜서 에너지로 쓰이도록 하는 비위장의 원천적 힘을 배양하는 것이 보약입니다.

건강한 청년이라면  한 두끼 밥을 거른다고 하더라도 생명 에너지는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쇠진한 노인은 밥을 잘 먹어도 생명에너지가 부족하기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밥만 먹고도 일상적 생활에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먹어도 힘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사람은 보약의 힘을 빌어 부족한 기운을 채워줄 필요가 있습니다.

음식은 영양가와 열량을 따져서 먹지만 보약은 장기의 허실(虛實) 정도와 기력 충실도를 따져서 처방합니다. 배부른 사람에게는 밥이 필요 없는 것처럼 기력이 충실한 사람에게는  보약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거꾸로 배고픈 사람에게 밥이 필요하듯이 기력이 부족하거나 쇠잔한 사람에게는  보약이 필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