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례의 양적·질적 성장을 가져온 5대 원주시의회. 자기성찰을 통해 남은 과제를 도출하고 한층 더 높은 자방자치 발전을 길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최근들어 지방자치 대의제를 보완하고자 주민참여예산제를 비롯해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하는 경향이 뚜렷히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가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우리가 택하고 있는' 현행 대의제가 제대로 작동돼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이자 주민의 대의기관인 의회가 주민의 뜻을 잘 헤아려 집행기관을 제대로 감시·견제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해 나갈때 지방자치가 발전한다는 뜻이다.

지방자치법에서는 지방의회에 의결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집행기관을 감시·견제하라고 행정사무 감사·조사권도 부여하고 있다. 조례의 제정·개정·폐지를 비롯해 예산의 심의·확정 등 11가지를 의회에서 결정하도록 했다. 또한 조례로써 의회에서 의결되어야 할 사항을 따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듯 의회는 주민을 대신해 자치단체의 의사를 결정하고 이를 집행하는 기관이 결정한 의사대로 행정을 잘 처리하고 있는가를 감시·견제하는 기관이다. 역으로 말하면 의회의 의사결정이 주민을 대변하지 못하거나 집행기관을 제대로 감시·견제하지 못하면 대의제는 무너지게 되고 의회는 주민의 대표기관이 아닌 주민의 대립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 원주시의회를 비롯한 지방의회는 주민의 대표기관과 주민의 대립기관 사이 어디쯤 서 있을까?

5대 의회가 남긴 뚜렷한 발자국은?

2006년 7월 3일 첫 임시회를 시작으로 출범한 5대 의회는 이제 6개월이 지나면 6대 의회에 그 바통을 넘겨줘야 한다. 의원 각자 감회가 다르겠지만 공통된 반응은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갔다"라는 것이다. 이 말에는 물리적 시간이 빨리 흘렀다는 뜻도 담겨 있지만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많은 일을 했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는 뜻도 내포돼 있다. 5대 의회는 분명, 4대 의회와는 다른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무엇보다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분야는 조례발의 분야이다.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의원발의 조례만도 83건에 이른다. 물론 83건 중에는 실적용이나 지역구 챙기기용 조례도 있었지만 대법원까지 가는 역경(?) 속에서 공포된 '원주 혁신·기업도시 편입지역 주민지원 조례'는 개발방식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던져줬으며 조례 제정의 범위를 대폭 확장해 놓았다. '주민참여 등에 관한 기본조례'는 대의제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제도화했다.

계류되긴했지만 '원주시 저소득 농업인 및 상공인 특별지원 조례안'은 특별조례의 가능성을 보여줬으며 지난 10월 1일 조례 제906호로 공포된 '원주시의회 의결사항에 관한 조례'는 미약하지만 의회 의결권 확대를 통한 권력의 분산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의원들은 주요 조례를 상임위에 상정하기 전 관련 단체 회원이나 관련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청회 또는 토론회 등을 통해 주민의 생생한 의견을 반영하려 했다. 양적성장과 더불어 상당한 질적 성장을 이룬 것이다.

의회 운영에 있어서도 여러가지 본보기 틀을 마련했다. 산업건설위원회를 산업경제위원회와 건설도시위원회로 구분해 상임위를 운영위원회 포함 4개로 재편한 것은 전문성 강화와 업무의 집중도를 높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짜여진 각본대로 일괄질문·일괄답변 식으로 진행되던 시정질문을 보완해 1문1답 형식으로 전환한 것도 행정에 대한 주민의 궁금증을 한층 더 해소시키는 역할을 했다.

남긴 과제를 통해 본 시의회의 미래

지난 9일 시의회 산업경제위원회는 장만복 의원이 발의한 '원주시 원도심 활성화 사업 지원 조례안'을 수정의결했다. 특별조례 성격을 띄고 있는데, 심의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이 "유사 조례를 제정한 자치단체 중 이를 현실에 적용하는 자치단체가 없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자 장 의원은 "조례를 근거로 주민 지원 사업을 펼친 곳이 있다"며 "안되는 쪽으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양적·질적 성장을 가져온 조례가 어떻게 운영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이자 앞으로 시의회가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이다.

'주민참여 등에 관한 기본조례'에 대해 한 공무원은 "발의한 의원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시행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원주 혁신·기업도시 편입지역 주민지원 조례'에 대해서도 집행기관에서는 "집행이 사실상 힘들다"라고 평가했다.

조례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의회가 집행 불가능한 조례를 남발하고 있는 것인지, 집행기관이 집행 가능한 조례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아울러 조례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조례에서 요구하는 예산을 투입해 조례의 입법취지를 살리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검토해 봐야 한다. 조례의 성장과정이 남긴 과제이다.

조례 제정의 전문성 향상과는 달리 예산 심의·의결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부족한 점이 많다는 평가이다. 예산은 정책을 계량화한 것으로 정책 그 자체이다. 하지만 개별적 예산의 심사는 어느정도 이뤄지지만 정책방향을 제시하거나 이를 수정하는 수준의 예산 심의는 부족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또한 예산을 심의하는데 있어 비용편익분석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예산서에 적힌 예산을 투입했을때 효과가 얼마만큼 될 것인지 따져보지 않는 것이다. 10억여원에 가까운 시청 전광판 설치 예산을 그대로 의결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예산 편성의 근거를 따지지 않는 것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지방재정법 제36조에는 "지방자치단체는 법령 및 조례가 정하는 범위 안에서 합리적인 기준에 의하여 그 경비를 산정하여 예산에 계상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예산편성에 있어서 가장 우선 해야할 게 자치단체장의 의지가 아닌 법령 또는 조례라는 것이다. 이러함에도 의회에서는 "조례를 만들어도 집행하지 않는다"라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불만을 넘어 법령 또는 조례를 우선 순으로 해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 역시 하나의 큰 과제이다.

이밖에도 의회 스스로에 대한 윤리적 잣대의 엄격화와 주민과 주민, 주민과 대 집행기관 간 벌어지는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남은 과제이다. 지방자치법에 규정하고 있는 청원제도 등을 이용해 주민의 입장에서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주민의 대표기관을 위해 부족한 2%

의회가 법적인 주민의 대의기관이어도 의사결정이 주민의 뜻과 배치되고 집행기관의 이중대로 전락한다면 더 이상 의회는 주민의 대표기관이 아닌 주민을 억누르는 또 하나의 권력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의회가 '전 구역, 전 주민의 일체적 이익'을 대변해야 함에도 이를 하지 못하면 이익집단이나 다름없게 된다.

의회에 주어진 권한은 주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도구이다. 5대 원주시의회는 조례제정과 새로운 의회 운영을 통해 이전 의회보다 주민에게 한걸음 더 다가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때로는 주민 의사를 대변하는 도구를 잘못 사용하거나 집행기관과의 거래를 통해 왜곡된 의사결정을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주민의 대립기관보다는 주민의 대표기관에 훨씬 더 가깝게 서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 이면에는 주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도구를 녹슬게 하거나 제도적 한계 때문에 집행기관을 제대로 견제·감사하지 못한 부분도 누적돼 있다.

행정사무 감사는 늘 1년에 한번 하는 것이어서 의지와는 상관없이 진행된다. 하지만 조사권의 경우에는 의회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문제점을 발견하겠다는, 잘못된 집행기관의 행정행태를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물론 조사권을 발동할 만한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5대 의회 4년 동안 이러한 일이 단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는가는 되집어 볼 부분이다.

의회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한 것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집행기관은 많은 돈을 들여 사업 시행을 위한 타당성 연구용역을 시행한다. 대부분 해당 사업이 타당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평가하는 연구지만 결론은 대부분 타당성과는 관계없이 집행기관의 의지대로 나온다. 하지만 의회는 이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다. 타당성을 조사할 재원이 없기 때문이다. 의회 내부에서도 늘 아쉬워 하는 부분이다.

회기 운영도 다시 검토해야 할 부분으로 지적되고 있다. 예전에는 1년 회기일수를 80일로 제한해 의안 건수가 많아도 주어진 시간 안에 다 처리해야 했다. 하지만 현재는 지방자치법이 개정돼 회기일수가 자율화됐다. 그럼에도 아직 1년 회기일수는 80일이다. 관행적으로 해 오는 것이다. 회기일수 확대를 통해 조례 등 각종 의안에 대해 주민의견을 더 수렴하고 심도 있게 논의하는 틀을 고민해야 한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시설관리공단을 설립하려던 원주시 계획이 의회 제동으로 성사되지 못했는데, 아쉬웠던 것은 시민단체가 시의 논리를 반박하는 동안 의회 역시 반대함에도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지 못한 것"이라며 "의회가 진정한 주민의 대의·대표기관이 되려면 재원확보 등을 통해 집행기관의 행정행위가 올바른지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5대 의회가 자기성찰을 통해 대표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제를 만들어 내고 이를 6대 의회로 넘기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선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