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원주투데이포털 | 6.4지방선거 맛집캘린더
 
  최종편집 : 2015.6.1 월
   
> 뉴스 > 기획특집 > 원주마을 탐구
     
원주마을탐구 2부: (11)행구동 오리현
자연마을을 찾아서
2009년 10월 26일 (월) 고민교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 치악산 기슭에 웅지를 틀고 있는 행구동 오리현 전경. 사진 앞쪽 철로는 이 마을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중앙선 철도.  
 

반곡초등학교를 지나 KT연수원 쪽으로 올라가면 오리현이다. 입구에는 골프장이 건설 중이고 마을 안쪽에는 원주외곽도로 공사로 어수선하다.

오리가 날기 위해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오리현은 마을 앞에 오리나무숲이 있어서 오리(梧里)로 불렸다고 한다.

문헌에 따르면 1750년대에는 부흥사면 오리촌, 1914년에는 이웃면인 판재면과 합병되면서 판부면 행구리 오리촌이었다가 1955년 원주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원주시 행구동 오리현이 됐다.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오리나무숲이 있었어요. 몇 백 년 동안 자란 아름드리나무가 엄청 많았어요. 숲이 얼마나 빽빽하던지 밖에서 보면 마을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죠. 그런데 그 숲이 사유지였던가 봐요. 어느 날 그 좋은 오리나무를 전부 베어버리고 농경지를 만들더라구요." 오리현에서 나고 자란 안대윤(63) 대동회 회장의 회고다. 오리나무는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고 20m이상 크기 때문에 목재로서의 가치도 높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오리현마을에는 오리나무가 없다.

또 오리현은 함지박마을로 불리기도 했다. 옛날 풍수가가 이곳을 두루 살피고서 "고장이 함지박모양으로 생겼고 지정(地精) 또한 그러하니 함 씨, 지 씨, 박 씨가 와서 승할 것이다"했다 한다. 200여 년 전 강릉 함 씨가 터를 잡은 이후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98가구 중 함(咸) 씨가 80가구에 이르렀고, 지 씨, 박 씨도 함께 살았다고 한다.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신작로가 생기고, 시내와 가까운 지리적 여건 때문에 외지인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오리나무숲이 없어지면서 함지박모양은 그 형체를 잃게 되었다. "옛날에야 뭐 순 함 씨 일가들이었죠. 6.25를 겪으면서 하나 둘 나가더니, 지금은 딱 4가구 남았어요. 이제는 함지박마을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지요." 물어물어 어렵게 만난 함대섭(72) 씨의 말이다. 몇 백 년을 함 씨 일가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여러 성씨와 함께 서로 공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수확의 계절! 치악산을 등 뒤에 두고, 넓은 원주벌을 내려다보고 있는 오리현도 추수가 끝나가고 있다. "콩뿐만 아니라 고추와 참깨도 풍작이예요. 우리 조상이 오리현에 들어와 살게 된 것은 140년 전부터라고 하는데 농사가 제법 잘 돼서 지금껏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지요." 이윤성(58) 씨의 밭에는 무농약 배추가 자라고 있다.

농사짓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곳 토박이들이다. 70여 가구가 살고 있는데 이중 80%이상이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우리 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는 도시이지만 농촌색이 더 짙어요. 그래서 하는 일도 면지역 이장과 똑같아요." 이경종(44) 통장의 말이다. 오리현은 산골이라 저 많은 농경지에 쓰이는 물이 어떻게 공급되는지 궁금했다. "KT연수원 안에 저수지가 있어요. 오래전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96년 말 KT연수원이 착공된 뒤로는 그쪽에서 관리를 하고 있지요."

오리현은 아직도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KT연수원이 들어오기 전에는 집집마다 지하수를 파서 먹었는데 KT연수원이 들어오면서 지하수가 고갈돼 연수원에서 물을 공급해 주고 있다. 그러나 조만간 상수도가 설치될 예정이어서 앞으로는 상수도를 이용하게 된다. 그런가하면 유선방송국이 지척에 있으면서도 유선방송을 볼 수 없는 오지 아닌 오지다.

신작로가 제일 먼저 생기고 행구동의 중심지였던 곳. 그러나 반곡일대는 혁신도시로, 황골은 수변공원으로 거듭나고 있지만 오리현만 시간이 멈춰있다. 마을회관에 있는 조그만 구멍가게가 마을에 있는 유일한 식료품점이다.

덜컹덜컹 치익 칙~ 기차가 지나간다. 마을회관으로 가려면 이 철로 밑을 지나야 한다.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중앙선 철도다. "하루 24시간동안 90여회 정도 다니지 않나 싶어요. 지금은 기차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이상한 생각이 들지요. 자장가로 기차소리만한 게 없더라구요. 6.25때 우리 마을이 잿더미가 됐는데 철길로 동네가 노출되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 시내로 나가려면 반곡역을 이용했지요. 철길 따라 한 20분 걸으면서 시내 간다는 기대감에 들뜨고는 했는데….

그리고 장마 때 사람들이 많이 죽었던 생각이 나네요. 봉대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아이들이 봉대철교를 걸어가다가 기차에 치이기도 했어요. 기차시간표를 일일이 알았던 게 아니어서, 기차가 안 오면 철길을 걸었거든요. 비가 많이 오면 감각이 떨어지니까 철길에 귀를 대봐도 잘 몰라요. 그러다보니 뒤에서 오는 기차를 미처 피하지 못해서 사고가 나는 거지요." 안대윤 대동회장의 말이다. 철로에 올라 사진을 찍다가 뒤를 돌아보고 놀랐다. 저 만치서 기차가 소리도 없이 달려온다. 앞만 보고 철로를 걷다가는 언제든 사고 당할 수 있겠다 싶다.

   
 
  ▲ 오리현을 가로지르는 중앙선 철길. 하루 90여회 이상 열차가 오가다보니 주민들에게 기차소리는 자장가가 된지 오래다.  
 

최고의 단결력 자랑하는 대동회

오리현의 대동회는 그 역사를 가늠할 수 없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도 없어요. 그냥 대대로, 끊임없이 내려왔을 뿐이니까요. 대동계라고 해서 계장이라고 불렀던 것을 대동회로 바꿨지요. 옛날에는 가을에 쌀을 모아서 기금을 마련했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회비를 전혀 받지 않고 있습니다.
   
 
  ▲ 오리현마을에는 옛모습을 잃지 않은 기와집들을 여러채 볼 수 있다.  
 

워낙 선조들이 잘 해 왔기 때문에 마을 공동재산이 2억원 정도 되거든요. 이자만으로도 작은 행사는 치를 수 있지 않겠어요. 봄가을로 관광을 다녀오고, 모내기하기 전에 단합대회를 합니다. 마을의 문제점이나 현안을 통장과 대동계 임원들이 함께 풀어나가기 때문에 말썽이 전혀 없습니다." 안대윤 대동회장의 말이다.

마을에서 특별하게 큰 행사를 치르지는 않는다고 한다. 옛날에는 단오날 제사도 크게 지냈지만 지금은 관광 다녀오는 일이 전부라고. 대신 마을에서 생기는 여러 정황에 발 빠르게 대처한다. KT연수원과의 문제도 대동회에서 주관해서 무난히 해결했다. 매년 12월이면 마을회관에서 대동회 총회를 연다. 2년 임기인 회장선출도 이때 하게 된다.

후보자를 선출한 다음 투표를 거쳐 가장 많은 표를 얻는 후보자가 회장이 된다. 대동회 회원은 100% 마을 주민이다. 새로 이사 온 사람들도 권유 없이 가입한다고 한다. 안내방송 한 번 하면 마을주민들이 전부 모일만큼 호응도가 좋다.  

맥 끊길 위기 '오리현 농악'
   
 
  ▲ 오리현 마을 전경. 행정구역은 도시지만 농촌색이 짙다.  
 

오리현농악은 회촌마을 매지농악과 함께 영서지역 특유의 농악을 대표한다. 경쾌하고 빠른 축원농악으로 3폭의 복상모를 이용하는 것이 특이하다. 치악산 서낭굿, 곽도진놀이, 또아리 틀기, 꽃따기놀이, 특기놀이, 12발상모놀이, 풍년놀이로 구성되는데, 이 중 꽃따기놀이, 나비놀이, 상법고놀이, 부서놀이는 다른 농악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경쾌하고 신명나는 사물의 가락에 어우러진 본 농악은 여장한 무동들의 독특한 춤사위가 절정을 이루면서 흥을 돋우어 농사에 지친 피로를 풀던 지혜가 엿보인다.

하지만 농악을 이끌어오던 상쇠 고현수 씨가 죽고, 동생인 상쇠 고현철(61) 씨도 몸이 아파 오리현농악은 맥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다. "옛날에 함께 농악을 하셨던 분들이 이제는 모두 나이 드셨잖아요. 70, 80이 넘으니까 농악하기가 힘들죠. 젊은 사람은 농악하려는 사람이 없고 하다보니까 맥이 끊기더라구요. 사물놀이는 5~6명이면 할 수 있는데, 우리 농악은 최소 20여명이 필요하거든요. 그만한 사람들이 없는 거예요.

옛날에 원주공고에서 몇 년 했는데, 그것도 그만 두었어요. 요즘 학생들이 농악에 취미가 있어야지요. 농악 하는 학생들한테 장학금도 좀 주고 그래야 그나마 농악하려는 학생들이 생길 텐데, 어디 그럴 처지가 되나요. 제가 알기로는 최광수 씨가 원주문화원에서 농악을 가르친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어떻게 되어 가는지 모르겠네요.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는 농악은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맥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고현철 씨의 얘기다. 원주를 대표하는 무형문화가 이렇게 사장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구멍 메운 '천년 느티나무'
   
 
  ▲ 마을회관 위쪽에 위치한 도 지정 보호수 '천년 느티나무'.  
 

마을회관 위쪽에 도 지정 보호수(강원-원주-3. 1982년)인 천년 느티나무가 있다. 높이 35m, 둘레 7.4m의 고목이다. 옛날엔 성황당이 있어서 고사를 지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성황당도 없어지고 고사도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단오 때에는 그네뛰기를 했고 마을 개구쟁이들의 놀이터였다. 어른 다섯 명이 손을 잡는다 해도 모자랄 만큼 두께가 굵다.

"6.25때 인민군들이 쫓겨 가면서 고목에 뚫린 구멍에다가 총을 숨겼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틈엔가 고목이 스스로 그 구멍을 메워 버렸어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 구멍을 보았거든요.

마을을 떠난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보니까 구멍이 없는 거예요. 20년 안팎에 일어난 일인데…신기하지 않아요?" 구멍이 뚫려 있었던 곳은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곳에 있다. 마치 유리창을 닫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고민교 시민기자

 

     관련기사
· 특별기획: 원주마을 탐구(2부)자연마을을 찾아서· 특별기획: 원주마을 탐구(2부)자연마을을 찾아서
· 특별기획: 원주마을 탐구(2부)자연마을을 찾아서· 특별기획: 원주마을 탐구(2부)자연마을을 찾아서
· 특별기획: 원주마을 탐구(2부)자연마을을 찾아서· 특별기획: 원주마을 탐구(2부)자연마을을 찾아서
ⓒ 원주투데이(http://news1042.ndsoft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치악산 기슭에 웅지를 틀고 있는 행구동 오리현 전경. 사진 앞쪽 철로는 이 마을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중앙선 철도.

오리현을 가로지르는 중앙선 철길. 하루 90여회 이상 열차가 오가다보니 주민들에게 기차소리는 자장가가 된지 오래다.

마을회관 위쪽에 위치한 도 지정 보호수 '천년 느티나무'.

오리현마을에는 옛모습을 잃지 않은 기와집들을 여러채 볼 수 있다.

오리현 마을 전경. 행정구역은 도시지만 농촌색이 짙다.

이윤성 씨

안대윤 대동회장

이경종 통장
기획특집: 시민의 발 시내버스, 인구
사건사고 브리핑
귀래 사랑의집 48년 악연 끊었다
4월 원주지역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
제16회 장미축제…축하공연·체험행사
행구동 아파트 거래현황…현대아파트 3
제11회 청소년축제 성황
원주천에서 수달 서식 목격
(주)인성메디칼 원주 이전 지역주민
원주문화재단,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강원도 원주시 서원대로 158 5층(단계동)  |  대표이사 오원집  |  Tel : 033)744-7114 / Fax : 033)747-9914
발행인: 심형규  |  편집인: 오원집  |  등록년월일: 2012년 4월 9일  |  등록번호: 강원 아 00125  |  사업자등록번호: 224-81-11892
Copyright 2009 원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jtoday1@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