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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청소! 내게 맡겨라"
2009년 09월 21일 (월) 이동진 시민기자
   
 
  ▲ 농촌 구석구석에 양심없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찾아내 처리하는 마을 사람들.  
 

"○○야!, 청소 나와라!"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이면 6학년 형들이 골목길을 달리며 향우반 회원들을 깨운다. 이불 속에 조금만 더 누워 있고 싶지만, 그렇게 미적거릴 수가 없었다. 향우회장의 출석체크가 있고 출석부는 학교에 제출돼 못 나온 친구들은 벌을 서야했던 기억이 선하다.

덜 깬 눈을 비비며 대문 앞에서부터 쓸기 시작해 골목길을 돌다보면 이른 아침 일터를 나서는 이웃어른들을 만나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게 되고, 청소가 끝나고 돌아오는 깨끗한 골목길을 보면 뿌듯하기까지 했다. 당시를 돌이켜 보면 집 앞 골목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관리하는 공간이었고, 따라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방치하면 한없이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는 그런 공간이었다.

'골목'하면 금방 연상되는 말이 '골목대장'이다. 아이들에게 골목은 가족을 벗어나 또래 집단 속에서 사회를 만들어보는 첫 무대이다. 거기에서 아이들은 권력이라는 것을 체험한다. 그러니까 골목은 그 자체로 아이들의 사회적 삶이 형성되는 공간인 셈이다. 또한 어른들에게는 만남과 소통의 공간이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저녁식사를 마치면 뜰 마루나 멍석이 놓여진 골목에 하나 둘 모인 어른들 사이에선 그 공간을 통해 마을의 크고 작은 소식들이 소통되고 공유되기도 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미디어 기능도 한 셈이다.

   
 
   
 
러나 요즘 들어 골목은 사뭇 살벌해졌다. 어린 아이들은 사라지고 그곳에 말없는 주차 전쟁이 넘친다. 저녁마다 주민들이 평상을 깔아놓고 담소를 나누던 풍경도 사라졌다. 바람에 흩날리는 휴지나 비닐 조각이 뒹굴어도 대문을 벗어난 '골목길'은 타인의 공간이고 소외된 공간으로 버림받고 있고 그냥 생활터전과 집을 오가는 통로로서의 기능만이 존재한다.

소외받는 '골목길', 골목 쓸던 아이들이 사라진 이 공간에 어르신들이 대신 나섰다. 가현동 28통 경로당(회장: 이호섭·72)은 회원이   40명이다. 간부진을 새롭게 구성하면서 경로당운영 활성화 일환으로 골목길 청소를 우선 사업으로 정하고 15일 첫 골목길 청소를 시작했다.

예전의 골목길을 누비며 부르던 향우회장 목소리를 대신하는 회장님의 핸드폰 전화가 분주하고 8시30분이 되자 하나 둘 회원들이 경로당으로 모인다. 회원 가운데 비교적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활동이 가능한 회원들로 골목이 배정되고 여자회원들은 경로당 실내청소를 시작한다. 예전의 빗자루 대신 집게와 쓰레기봉투를 나눠들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문화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동네를 아끼는 마음은 오히려 예전 못지않게 의욕이 넘친다. "나이들어 대접만 받기보다는 회원들 건강도 챙기면서 솔선해 마을일을 우리 스스로 찾아 나선다는 게 의미 있다"는 이호섭 회장님 말씀이다.

○○일보 '이규태코너'에 실렸던 어르신들의 마당쓰는 일과 관련한 글하나를 소개한다.  "마을에 애경사가 있거나 추렴해서 돼지를 잡았을 때 살코기만이 주인소유요, 그 내장고기는 마을 노인들 소유로 돌리는 것이 관례였다. 마을에 따라 60세 이상 또는 70세 이상의 노인이 있는 집에 골고루 등분하여 나누어 드렸으며, 이 경로습속을 배장(配臟)이라 했다. 환갑 지난 노부모를 모신 집에서는 양식이 떨어져도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먼동이 트기전에 좀 잘사는 집에 찾아가 마당을 쓸어놓고 돌아오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 불청의 노동을 '마당쓸이'라 하는데, 노부모 끼니를 이을 양식이 떨어졌다는 묵계된 사인인 것이다.

주인이 일어나 보고 머슴을 불러 어느 뉘의 마당쓸이냐고 묻고, 그 노인의 나이를 물은 다음 열흘 먹을 것, 보름 먹을 것 가져다 주라고 시킨다. 이렇게 베푼 곡식은 상환의무가 없다.

좀 사는 집에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 몫으로 일정량의 곡식을 내어 그 이곡(利穀)으로 자선을 베푸는데, 이를 수명 비는 곡식이라 하여 명곡(命穀)이라 했다. 이 명곡에서 마당쓸이 같은 복지성의 곡식을 지출했던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습으로 남아있던 우리네 전통이 근대화 과정에서 증발해 버린 것이 하나 둘이 아니겠지만 의미는 달라도 가현동 경로당 어르신들의 골목길 청소 사업이 예전의 골목길에서 이뤄지던 만남과 소통의 공간으로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가현동경로당에서는 매월 15일 이렇게 골목길을 청소하기로 하였다.

이동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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