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12월 어느 날 늦은 저녁 퇴근길에 무료급식소 십시일반 앞에 있는 교회 처마 밑 구석에서 달랑 박스종이 한 장 깔고 자고 있는 노숙인을 보았습니다. 십시일반에서 자주 점심 식사를 하던 낯익은 사람이었습니다.  추운 날 밤에 사고가 날 것 같아 그 사람을 차에 태워 역전에 있는 노숙인쉼터에 데리고 가서 재웠습니다. 그리고 그 뒤 그는 쉼터에서 몇 개월 생활하다가 술 먹고 싸워 그곳에서 나와야 했죠. 우산동 여인숙으로 거주지를 옮겨주었고, 자주 라면도 사다주곤 하였습니다. 얼마 뒤 그는 여인숙에서도 쫓겨나 원주천 다리밑과 역전을 오가며 술독에 빠져 길거리 삶을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오랫동안 앉아서 밥 대신 술만 먹어 혼자 일어나기도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장애인·노인 생활보호시설인 갈거리사랑촌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5살 때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누나는 고모님 따라 브라질로 가고 형과 아버님과 함께 살았는데, 몇 년 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형도 뒤를 이어 죽고 혼자 남게 되었답니다. 낮에는 차에 멸치, 김 같은 건어물을 싣고 시골 장을 다니며 장사를 하고, 밤에는 술을 가까이 하며 그런대로 잘 지냈습니다. 언젠가 원주에 큰 홍수가 왔을 때 원주천변에 세워둔 그의 건어물 차가 떠내려가 버렸답니다. 그 안에 여러 가지 건어물과 신분증이 든 지갑도 있었는데 그의 모든 재산을 하룻 밤새 잃어버리게 된 것이죠. 그 뒤로 그는 자포자기하며 더욱 술과 가까워지고 다리밑과 역전의 어려운 삶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답니다.

몇 년 전 그의 누나가 그를 찾으러 브라질에서 원주로 왔었습니다. 누나는 쌍다리 밑에서 그를 보고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죠. 그는 대낮부터 술에 취해 있었고, 앙상한 팔다리로 혼자 걷지도 못했으니까요. 원주에 있는 10여 일 간 누나는 여관에서 동생을 데리고 자면서 매일 목욕시켜주고 좋은 밥 사주고 또 밤에 혼자 울음으로 지샜답니다. 낮에 만나면 벌겋게 눈이 부운 것을 볼 수 있었죠. 누나는 이번에 브라질로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건강이 너무 좋지 않아서 다음에 다시 데리러 오겠다며 잘 부탁한다는 얘기를 남기고 떠나갔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부탁하는 누나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누나는 브라질에서 병원을 하는 부부의사였죠. 지난 해 그의 매형이 한국에 와서 그를 누님과 고모님이 계신 브라질로 데리고 갔습니다. 누나가 약속을 지켰다고나 할까요. 몇 년 전 원주에 와서 30여 년 만에 노숙인이 된 동생을 보고 돌아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 달 그 누나가 다시 원주에 왔습니다. 다시 원주에 오고 싶다고 하여 있을 곳을 알아보러 왔다고 합니다. 밖에 나가도 아는 사람 없어 집에만 갇혀 살아야만 하고 건강은 더 좋아지지 않고 오히려 정신건강이 더 나빠질 것 같다고 합니다. 수 십 년간 헤어져 있던 친 누님과 고모님과 함께 부유한 환경에서 사는 것도 그에게는 마땅치 않았나 봅니다.

노숙인, 가족, 행복 등을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