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주민들이 출근길에
  기분 좋아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행복해요.
  그러다 보니 눈·비가 내려도
  빗자루를 놓을 수 없죠."

　고희를 앞둔 할아버지가 8년째 마을 길 청소를 도맡고 있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감동의 주인공은 김홍경(69·개운동) 할아버지. 그는 개운동에서 빗자루 할아버지로 통한다.

　김 씨 할아버지의 하루일과는 동이 트는 새벽 빗자루와 쓰레기봉투를 들고 집을 나서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가 발길을 멈추는 곳은 개운동 물레방아거리를 마주보고 있는 성바오로 어린이집과 영흥주유소 사이. 그때부터 무항1길과 무항2길을 따라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를 말끔히 쓸어낸다. 할아버지의 빗자루는 큰 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단구동성당, 원주자활센터, 원흥3차아파트까지 인근 골목 구석구석 안 닿는 곳이 없다. 그렇게 시작된 청소는 보통 2시간동안 계속된다. 낙엽이 거리를 덮는 가을이면 청소시간은 4시간을 훌쩍 넘길 때도 많다. 그래도 할아버지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오늘도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었다는 사실에 마냥 뿌듯할 뿐이다.

　할아버지가 새벽청소를 시작한 것은 학성동에서 개운동으로 이사한 지난 2002년부터. 올해로 벌써 8년째다. 학성동에서 소금공장을 운영하며 15년간 새마을지도자와 통장일을 할 때 몸에 밴 봉사정신이 어느새 생활이 됐다.

　사실 할아버지는 학성동에서도 소문난 일꾼이었다. 자신의 일은 뒷전이고 마을일을 챙기는 할아버지 덕에 소금공장 운영이나 판매 등 본업은 언제나 아내인 신영희(66) 할머니 몫. "밖으로만 도는 남편에게 투정 한번 부린 적이 없다"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주민들의 칭송을 아내 덕으로 돌린 할아버지는 "그래도 내가 마을일을 열심히 한 덕에 주민들이 고맙다며 소금을 많이 팔아줬다"고 소개하곤 겸연쩍은 미소를 짓는다. 덕분에 개운동으로 이사할 때는 학성동 주민들로부터 "왜 이사를 가느냐"며 원성 아닌 원성을 듣기도 했단다. 

 
　"마을 주민들이 출근길에 기분 좋아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행복해요. 그러다 보니 눈·비가 내리는 날에도 빗자루를 놓을 수 없었어요."

　할아버지는 일년 열두달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마을길을 청소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돈으로 직접 규격 쓰레기봉투를 구입해 버려진 쓰레기를 담는다. 이런 선행이 알려지면서 지난 7월에는 모범시민상을 받기도 했고 개운동 주민센터에서도 할아버지에게 종종 쓰레기봉투를 지원하며 감사함을 표하고 있다.

　초기 '이상한 사람' 쯤으로 여기던 이웃 주민들도 할아버지의 마을사랑을 알고난 지금은 마을의 자랑으로 여긴다. 길에서 마주친 동네 주민들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일일이 수고한다는 인사를 건네며 감사해 한다. 취재 중에도 할아버지를 알아 본 주민들은 "저 할아버지 상 줘야해요"라며 한마디씩 거들고 나설 정도. 덕분에 새벽길을 쓰는 그의 마음은 언제나 밝다.

　늘 옆에서 할아버지의 선행을 지켜 본 지종현(62) 개운 3통장은 "새벽청소는 물론 직접 쓰레기 봉투를 구입해 쓰레기를 담는 모습은 진정으로 존경받는 어른의 모습"이라며 "할아버지의 모습에 영향을 받아 매일 아침 자기집 앞을 청소하는 주민들이 늘면서 덩달아 마을전체가 깨끗해졌다"고 자랑했다.

　할아버지의 새벽청소는 따뜻한 마음 때문에 더욱 빛난다. 새벽 잠이 없어 보통 새벽4시면 잠에서 깨지만 해가 늦는 겨울이면 할아버지의 청소시간도 새벽에서 오전 시간대로 늦춰진다. 여기에는 등교길 학생들을 피하기 위한 할아버지의 깊은 속내가 담겨있다. 아무리 주민을 위한 일이라 해도 등교길 학생들에게 먼지를 마시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겨울이면 소금판매라는 본업도 청소시간에 따라 하염없이 미뤄지기 일쑤다.

　힘 닿는 때까지 새벽청소를 계속하겠다는 김 씨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빗자루는 마을길을 쓸지만 그의 마음은 각박한 현실 속에 더럽혀진 우리의 '마음 길'을 쓸고 있는지도 모른다.